언론의 행정부 취재를 가로막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후다닥 결정되는 것을 보며 참 오랜만에 '독재'라는 말을 떠올린다.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사회 각 분야의 발전으로, 현실적으로 독재의 실행이 가능한 상황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본 발상과 그 발상에서 정책 결정에 이르는 과정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흔히 '제4부'로 불린다. 권력 집중과 그에 따른 국민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권 분립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구와 국민 사이에는 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국가기구가 본연의 책무를 다하는지를 감시하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그 틈을 메워온 것이 언론이다.
언론이 국가기구와 국민 사이의 틈을 메우려면 무엇보다 국가기구 가까이서 감시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헌법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취재의 자유나 정보 접근의 자유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이유로 '비본질적' 제한을 가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법률로써만 가능하다.
그런데 언론의 취재를 제약하는 명백한 '취재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고차원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부는 일언반구도 없다. 더욱이 헌법적 권리 제약을 국회 입법권을 뛰어넘어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이것이 독재적 발상 아니고 무엇인가.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독재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발언은 정상적 정부 조직이라면 언론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현이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지만 국정홍보처는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뛰었고, 각 부처에서 적지 않은 반론이 제기됐지만 모두 무시됐다.
우리는 야당의 모습이 보기 싫다고 아예 국회를 무력화했던 유신시절의 정치를 기억한다. 뚜렷한 공익 목적을 결여한 '대통령의 뜻'이 일사천리로 내달리는 모습에서 유신독재 못지않은 독재적 발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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