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칸영화제 한 상영관. 영화 시작과 함께 8명이던 관객은 조금씩 줄어가더니, 영화가 자랑하는 반전이 나오기도 전에 5명이 상영관을 떠났다.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톱스타가 출연한 ‘가족’을 다룬 영화였다.
#2. 한류스타 송승헌 권상우가 출연한다는 <숙명> 의 포스터가 한 부스에 걸렸다. 예전 같으면 입도선매가 벌어질 만도 한데 한류 근원지인 일본의 바이어들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제 중반까지 확답을 준 바이어는 한명도 없다. 숙명>
#3. 외화구매 담당자는 각종 미팅으로 시간을 쪼개기 바쁘다. 한국영화에 밀려서 한동안 힘을 쓰지 못했던 외화 수입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2배나 되는 사람들이 외화 구매를 위해 칸을 찾았다고 귀띔한다.
충무로의 깊은 한숨이 칸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대 영화마켓의 하나인 칸영화제가 중반으로 향하고 있지만, 한국영화 부스는 허탈하다. 예년에 비해 절반 가량 줄어든 판매, 대신 그만큼의 외화 구매가 늘었기 때문이다.
쇼박스 안정원 해외배급팀장은 “해외시장에서도 한국영화가 관객 기대를 받지 못하고, 외화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이 반영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쇼박스 역시 지난해에 비해 외화 구매를 2배 가량 늘렸다.
대형배급사 뿐만이 아니다. 소규모 외화 수입업자들도 대거 칸으로 날아와 좋은 외화를 손에 넣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칸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쾌하지 못한 한국영화의 자화상은 심각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비롯됐다. 우회상장과 한류열풍으로 과도한 영화제작 환경이 조성됐고, 수준이 못 미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영화를 수입해 낭패를 본 해외 바이어들은 아제 당연히 ‘메이드 인 충무로’ 제품을 믿지 않게 됐다. 한국영화 최대 수입국인 일본 수출이 지난해 82.8%나 감소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한 해외사업 관계자는 “일본 바이어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영화계가 일본을 상대로 퀄리티가 안 되는 영화를 배우이름으로 들이밀어 터무니 없는 가격에 장사를 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한국영화 수입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칸영화제 기간동안 매일 발행되는 소식지인 칸마켓은 물론 다른 잡지에서도 한국영화의 과열열기에 따른 부작용을 잇따라 지적했다.
칸마켓은 19일자 ‘과열된 한국영화’(Overheating Korean Film)라는 기사에서 ‘수출감소와 시장한계 그리고 스크린쿼터 축소 등의 요인이 한국영화산업의 새로운 트랜드를 자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할리우드 리포터 역시 21일 ‘근심스러운 서울’(Troubled Seoul)이라는 기사로 한국 영화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특히 유명 배우와 감독의 과다하게 높은 개런티와 제작 펀드에 대해 언급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영화의 침체가 해외 영화계의 관심사로까지 떠오른 셈이다.
해외 마켓 현장의 목소리는 이를 대부분 인정하면서, 방만하고 안일했던 한국영화가 각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쇼박스 안 팀장은 “시장의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기획, 제작, 판매 등 일련의 시스템 고안이 절실하다.
특히 해외 마케팅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아시아 등 지역에 맞춤형 전략을 적극적으로 세워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MK픽쳐스 박홍진 해외사업팀장 역시 “호황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한국 영화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호황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창의적인 기획, 제작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 칸(프랑스)=김성한 wing@hk 기자 wi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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