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성남아트센터. 내한공연을 하루 앞둔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42)의 리허설 현장에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33)이 찾아왔다. 글레니로부터 마림바 말렛(채) 쥐는 법을 배운 전제덕은 “어떻게 한 손에 여러 개를 쥐고 연주하는지 신기해요. 힘 조절하기가 어렵겠어요. 장구는 이렇게 치는데”라며 장구 치는 시늉을 했다.
전제덕이 사물놀이패의 장구잽이 출신이라는 이야기에 글레니는 “사물놀이에 관심이 많다”며 눈을 반짝였다. “한국의 사물놀이가 해외에서 높은 호응을 얻는 것은 타악이 세계 공통의 언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CD나 MP3를 통해서 음악을 들을 뿐, 직접 음악을 느끼려 하지 않아요. 음악을 소화하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글레니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전제덕은 앞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음악을 놓고 대화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장벽이 없었다. 두 사람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기 이전에 최고의 연주자들이다. 영국 출신인 글레니는 12세에 청각을 완전히 잃었지만 뛰어난 리듬 감각과 테크닉으로 정상의 자리에 섰다.
베를린 필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데뷔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헌정된 타악기 작품이 140여곡에 이를 정도로 타악기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귀가 아니라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으로 소리를 느낀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는 늘 맨발이다.
전제덕이 “음악적 성과보다 장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하자 블레니는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먼은 그런 질문을 받는 게 지겨워서 ‘나는 다리로 연주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더라”며 웃었다.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나에게 그저 삶의 일부다. 사람은 종류가 다를 뿐 누구나 장애를 갖고 살아가지 않느냐. 장애와 비장애가 아니라 능력과 자질로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레니는 바비 멕페린, 스팅, 킹스 싱어즈, 황병기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22번째 음반을 준비하고 있으며 직접 작곡도 한다. 글레니는 23일 직접 편곡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를 비롯해 스티브 라이히, 게이코 아베 등의 작품을 연주한다. 토카타와>
그는 공연장에 오겠다는 전제덕에게 “작곡가들이 들려주는 음악적 목소리가 모두 다르다. 마음을 열고 소리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당신도 타악기를 연주하니까 무대 위에 올라와서 함께 연주하면 어떨까요?”라는 글레니의 농담 섞인 제안에 전제덕은 손을 내저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김주성 기자 poem@hk.co.kr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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