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5년 9월 추석을 앞두고 한창희(52) 당시 충주시장은 시 공보관을 통해 시청출입기자 17명에게 사과 한 상자씩(5만원 상당)을 돌렸다. 공보담당관실이 매년 업무추진비로 행해온 오래된 관례였고 행자부 회계감사도 받은 사안이었다.
하지만 한 시장은 물론, 돈을 전달한 공보관까지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돼 지난 해 9월 각각 벌금 150만원, 100만원을 최종 선고 받고 불명예 퇴직했다. 벌금이 100만원 이상 확정되면 단체장은 당선무효, 공무원은 공직이 박탈된다. 한 시장은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남기고 떠났다.
#2. 서찬교(54) 서울 성북구청장은 지난 해 1월 서울시의원 3명에게 50만원씩을 격려금 형식으로 지급하고, 2월에는 성북구의회 의장에게 세미나 경비 지원금 명목으로 330만원을 직접 전달했다.
5ㆍ31 지방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이었고 전달 액수도 한 시장보다 훨씬 많았다. 서 구청장 역시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됐으나 우여곡절 끝에 지난 달 벌금 90만원이 확정돼 구청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6개월 간격을 두고 두 기초단체장에 대해 내려진 판결과 서 구청장의 재판과정을 보면 '고무줄 선거법'이라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특히 천당과 지옥을 오간 서 구청장의 재판과정은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1심 판결은 준엄했다. 재판부는 "혼탁하고 부패한 선거풍토를 바로잡아 바람직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가혹하다고 비난을 받을 만큼 엄격하게 당선을 무효로 돌려야 한다"며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구의회 의장에게 경비를 지원한 행위가 "전통 예의에 맞는다"며 무죄로 판결, 벌금 80만원에 처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구의회 의장 지원 부분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당연히 엄벌에 처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고법의 형량은 겨우 10만원을 추가한 90만원이었다.
이처럼 1심에서 당선 무효됐다가 2심에서 번복된 판결은 한두 건이 아니다. 이대엽 성남시장을 비롯, 조억동 경기 광주시장, 김용서 수원시장, 김현풍 서울강북구청장, 신현국 문경시장 등 기부행위 혐의로 걸렸던 단체장들에게 모두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이를 어찌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있을까.
조억동 시장의 2심 재판과 서찬교 구청장의 파기 환송심을 맡은 변호사는 서울고법 선거사범 전담재판부 부장판사 등으로 재직하다 올해 2월 한 법무법인으로 옮긴 변호사였다. 그가 맡은 재판에서 흔히 말하는 '전관예우'가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기부행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선거법에 있다. 현행 법상 단체장이 부모님 회갑연에서 음식물을 주거나 기자간담회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조차 기부행위에 해당된다.
일상적이고 의례적인 행위들까지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모든 행위에 대해 형량을 정해놓지 않는 이상, 판사의 재량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로비의 가능성이나 전관예우가 통할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중앙선관위에서조차 관련 규정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기부행위와 고유한 직무행위, 일상의 관례ㆍ관행으로 세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풍양속과 기부행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한 널뛰기 판결은 피할 수 없다. 선거사범을 엄히 다스리겠다는 의욕도 좋지만, 객관적 처벌기준 마련과 철저한 집행이 뒤따르지 않으면 법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만 낳을 것이다.
최진환 사회부 차장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