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재래시장에서 무게를 다는데 흔히 쓰였던 접시저울. 불과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은 이 저울의 신뢰성을 의심(?) 하면서도 나중에 덤으로 얹어주는 주인아저씨의 인심에 그저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정품ㆍ정량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면서 전자저울은 상거래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주인아저씨의 인심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사는 소비자나 파는 상인 누구도 상품 중량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전자저울 제조 전문업체인 ㈜카스의 김동진(60) 사장. 그는 국내 저울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킨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다. ㈜카스는 현재 국내 전자저울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약 20%의 점유율로 5위권을 지키고 있다. 김 사장은 “카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카스가 이만큼 뿌리를 내리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과 인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사장은 “저울 사업이 이처럼 어려운 줄 알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며 주마등처럼 스쳐간 지난날을 회고했다.
핵심 기술인 ‘센서’를 천신만고 끝에 독자 개발에 성공해 자체 제작한 전자저울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비싸다’ ‘필요 없다’ 등 갖가지의 이유로 전자저울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재래식 저울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정확한 전자저울을 왜 상인들이 거부했는지.” 그러나 김 사장이 그 대답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지 전자저울이 재래식 저울보다 비싸서 외면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만해도 적당히 저울을 눈속임해 가며 마진을 챙겨가던 시절이다 보니, 정확한 전자저울이 상인들에겐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았던 것이다.
김 사장은 “이른 새벽부터 직원들과 직접 전자저울을 들고 상가를 찾아가 영업을 시작했지만 그 때마다 문전박대 당하는 건 다반사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확성을 강조하며 전자저울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상인들로부터 돌아온 것은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재래식 거울로 속이면서 장사를 해왔단 말이냐”는 식의 비난 섞인 발언들 뿐이었다.
“가락시장을 포함한 그 밖의 재래시장 입구에 무료로 전자저울 설치해 놓았습니다. 사용해 본 다음 제품을 구매하라는 뜻에서 말이죠.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가보면 여지없이 모두 망가져 있었습니다.”
상인들을 대상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김 사장은 결국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그는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가 기분 좋아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전자저울을 사용합시다”라고 가는 곳마다 외쳐댔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자저울을 알리기 위해서다. 동인천역에서 수원역까지 왕복하기를 6개월. 이 역시 별반 효과는 없었다. 주변 상인들로부터 오물 세례만 받았다.
도무지 빛이 보이지 않던 그 때,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가기 시작했다. 구청 직원의 도움으로 어렵게 재래시장의 한 정육점에 제품을 납품했는데, 이것을 시발점으로 인근 가게에서 전자저울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전자저울을 갖춘 가게로만 손님이 몰렸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변 상가는 전자저울을 갖추지 않고서는 영업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당시 시장을 둘러본 김 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 때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카스 전자저울은 꾸준하게 판매량을 늘려갔다. 백화점 식품 코너를 포함해 무게로 거래를 하는 곳이면 대부분 전자저울이 자리를 잡았다.
국내에서 기반 마련에 성공한 카스는 마침내 1987년 5월 포르투갈에 전자저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여행하던 포르투갈 바이어가 주간지에 난 광고를 보고 먼저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그때는 제대로 된 해외 영업팀도 없었는데 어렵게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너무 기뻤던 나머지 울타리도 없었던 회사 정원에서 50여명의 직원을 모아놓고 기념행사를 가졌습니다. 기념사 도중 목이 메어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카스는 말 그대로 상승가도를 이어갔다. 첫 수출을 발판 삼아 카스는 터키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헝가리 등 유럽지역으로 수출 전선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갔다.
김 사장은 “세계 저울시장에서 아직도 전자저울을 사용하고 있는 비율이 30%에 머물러 있다”며 “재래식 저울을 사용하고 있는 나머지 70%에 해당되는 세계 시장을 ‘카스’ 상표가 붙어 있는 전자저울로 채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허재경기자 ricky@hk.co.kr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카스, 172개국에 수출… 러시아서 점유율 1위 차지
전자저울 전문 제조ㆍ판매사인 ㈜카스는 전자저울의 핵심 부품인 로드셀에 들어가는 응력감지센서(스트레인 게이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다.
카스가 생산하는 전자저울은 대형슈퍼마켓과 백화점 등에서 사용되는 상업용에서부터 일반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쓰이는 산업용,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 체중을 측정하는 가정용까지 다양하다. 50여명의 인력이 근무하는 연구ㆍ개발(R&D)센터에서는 해마다 30여종의 각종 신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1997년 국보 제29호인 에밀레 종의 무게가 1만8,908㎏이라는 것을 밝힌 곳도 카스다. 에밀레 종은 삼국유사에 12만근의 구리로 만들어졌다는 기록만 전해져 내려왔을 뿐 당시까지만 해도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정확한 무게를 측정할 수 없었다.
본래 카스는 전자저울을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었다. ‘부국 정밀기계’라는 이름으로 1983년 1월 간판을 내걸었다.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는 한국과학기술원과 공동으로 산업용 로봇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산업용 로봇의 핵심 부품인 무게 감지 장치 ‘로드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막대한 비용이 소요돼 수익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전자저울 업체로 변모하면서 상호도 ‘㈜카스’로 변경했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해외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카스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 해외로 수출하는 국가는 50%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러시아를 비롯해 총 172개국에 달한다. 2000년 매출 500억원을 넘어선 카스는 2003년 580억원, 2006년 721억원 등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도 지난해에 비해 25% 가량 성장한 900억원으로 책정했다.
카스는 또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전자저울에 IT기술이 집약된 디지털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가정용 디지털 체중계인 ‘엔바디’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간단한 입력만으로 몸무게를 종합 관리할 수 있는 멀티 모니터 기능을 갖추고 있다. 50g까지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한 이 제품은 체지방과 비만도 기초대사량 등 15개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허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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