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중국과 중국인을 흔히 '되놈'으로 낮잡아 불렀다. 일본과 일본인은 '왜놈', 미국과 미국인은 '양놈'으로 부른 것과 근본은 비슷하다. 나름대로 뚜렷한 호오(好惡)의 감정과 생각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앞선 세대의 언어습관을 무심코 듣고 배운 탓이 컸다.
그 어른들은 호칭만 전수한 게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과 더불어, 말과 글로 전해 내려오는 숱한 오해와 미신까지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우리 역사 및 현실과 얽히고 설킨 이(異)민족과 외국인을 보는 안목과 편견을 함께 키워준 셈이다.
● '중국 때리기'추종 어리석어
이를 남달리 이민족과 외세에 휘둘린 결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모든 나라가 인접하거나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깊이 얽힐수록 비이성적으로 편차가 큰 애증의 감정을 품는다. 다만 안팎으로 성숙한 사회에서는 사회 변방의 선정적 논란에 그친다. 사회 전체 식견과 도량이 거친 논란을 견제하고 절제한다.
우리 사회도 외국인은 가림 없이 '놈'으로 부르던 습관을 버린 듯하니, 그만큼 성숙했다고 볼만 하다. 그러나 일본 미국과 비교할 때, 중국은 아직 우리의 의식 저변에 '되놈' 수준 가까이 머무는 듯한 느낌이다.
평소 거대국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경탄하다가도, 서구나 우리와 이해가 엇갈리는 대목에서는 대뜸 무식해서 건방진 '놈' 으로 되돌리기 일쑤다. 이런 혼란이 과연 누가 미숙한 탓인지, 냉정하게 헤아릴 필요가 있다.
중국은 지난 주 상하이에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연례총회를 주최, 아프리카 20개국의 기반시설 건설 등에 200억 달러(약 19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베이징에서 아프리카 48개국 정상급이 참석한 '협력 포럼'을 주최했고, 원자바오 총리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아프리카를 순방했다. 서구 보수언론은 이 모든 게 중국에 긴요한 석유를 노린 선심ㆍ물량 공세라고 논평했다. '제국주의적 자원 착취'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프리카 국가의 독재와 인권상황을 무시한 지원을 나무라기도 한다. 또 이들이 석유 수입에만 의존하도록 부추겨 균형발전을 저해한다고 경고한다.
이런 서구적 시각은 우리 언론에 그대로 옮겨진다. 그러나 객관적 평가는 다르다. 중국은 오히려 과거 서구의 제국주의적 행태와 달리 호혜적 협력에 힘을 쏟고 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빌미로 덜미를 잡고 흔들거나 마음대로 주무르려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국가들은 값싼 공산품을 제공하는 중국과 교역을 크게 늘리면서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
서구의 악의적 '중국 때리기'는 군사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유행처럼 성행한다. 과거의 '황화'(黃禍)론을 닮은 '중국의 위협'(China Threat)을 외치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체로 중국과의 경제적ㆍ전략적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명분 다툼, 대세 장악을 위한 것이다.
이 방면에 정통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는 최근호 커버스토리에서 위안화 환율을 둘러싼 미 의회의 압력 등 요란한 '중국 때리기'는 불합리하고 지혜롭지 못하다고 규정했다. 서구의 보수적 논리를 비판 없이 추종, 전파하는 이들이 특히 새겨 들을 만 하다.
● 편견 없는 냉철한 시각 지녀야
중국은 경제적 도약에도 불구하고 아직 체제와 사회의 수준은 우리에게 못 미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능력, 이를테면 '국가 수준'은 오히려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적인 증거를 들면, 과거 중국의 패권 행보를 누구보다 우려하던 동남아 아세안(Asean) 지역에서 중국은 신뢰 받는 지도적 국가로 자리 잡았다.
성숙한 포용 자세와 정교한 외교노력에 크게 힘입었다는 평가다. 미국과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 '도덕적 영향력'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중국의 국가 수준, 도덕적 처신을 눈 여겨 보지 않고 함부로 '되놈'을 외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