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대세를 잃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우국지사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는 다르다. 내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해 범여권 통합 향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 말은 노 대통령이 비판했던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한 지역주의 회귀가능성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19일 광주 무등산 산행에 동행한 광주ㆍ전남지역 시민단체 대표들과 노사모 회원들에게 “지역주의로 돌아가는 통합은 적절치 않고, 그것이 대의이지만 이 때문에 우리당이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배를 모는 선장은 폭풍우가 몰아치면 돌아가거나 배를 잠시 피신 시켜야지 침몰하게 할 수는 없다”며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고, 그 다음에는 대세를 만들어야 하나 대세를 잃는 정치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지역주의 타파를 ‘대의’로, 범 여권의 통합을 ‘대세’로 비유하며 대의에 집착하다 대세를 잃어 정권을 넘겨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지부진했던 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논의가 힘을 받게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민주당 통합에 반대하며 당 사수를 외치던 우리당 내 친노파 의원들의 태도에 노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이르면 다음주 중 탈당을 예고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 진영 등이 타임 스케줄을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 전 의장이나 김근태 전 의장 등 당 주류 세력은 통합과정에 노 대통령이 끼어 드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노 대통령 및 친노 세력은 대선전략 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동시에 친노 진영과의 정책 및 이념의 차이, 깊게 패인 감정을 골로 인해 함께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20일 두 전직 의장과 민주당측의 탐탁치 않은 반응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한가지 포인트는 18일 5ㆍ18 기념식장에서 지역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과 민주당을 겨냥한 발언을 했던 노 대통령이 하루사이에 다른 말을 한 배경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노 대통령도 당 분위기가 대의를 따르는 세력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겠는가”라며 “공식석상에서 언급하기 힘든 발언을 보다 자유로운 자리인 지지자들과의 만남에서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따라 말을 바꿔 정치적으로 상반된 메시지를 전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상당하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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