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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 뚫어도 '신불자 딱지'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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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 뚫어도 '신불자 딱지' 장애물

입력
2007.05.2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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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용불량자는 약 3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일자리는 생명이다. 돈을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경제력을 회복해 잃어버린 신용을 되찾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고 단단하다. 사회의 시선이 싸늘한 데다 당사자들도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 돼 있다.

박상철(50ㆍ가명)씨는 지난해 중견 기업 3군데에 취업했다. 그러나 모두 3일 이상 다닌 적이 없다. 박씨는 20일 “저주 받은 멍에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제조업체의 임원을 지낸 그는 신용불량자이자 실업자다. 1999년 창업했는데 6년 만에 회사가 부도났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그는 수 억원의 빚까지 져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박씨는 “면접 땐 차마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했지만 입사 후엔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아 털어놓았다. 그 때마다 사업주들은 안면을 바꿔 ‘그만 뒀으면 좋겠다’며 압력을 줬다”고 했다. 그는 “신용불량자가 죄인도 아닌데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이 사회가 정말 무섭다”며 한숨 지었다.

김영관(46ㆍ가명)씨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직원 200명을 거느린 레저회사 사장이었다.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회사가 부도 나 빚더미에 앉았다. 김씨는 물론 직장에 다니는 아내까지 신용불량자가 됐다. 김씨는 무려 10년간 임시ㆍ일용직만 전전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은행의 월급 가압류를 피하기 위해 임시ㆍ일용직을 시작했는데 이젠 빚도 거의 다 갚아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 회사 취업은 쉽지 않다. 그는 “신용불량자에 대한 선입견 탓도 크지만 10년 동안 ‘막일’만 해오다 보니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의 허가를 받아 2003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신용회복위원회는 2004년부터 신용불량자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취업 실적은 아직 미흡하다. 지난해 구직을 등록한 2만8,628명 중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2.4%인 3,549명이다. 올 4월말 현재까지 7만7,741명이 구직 등록을 해 12.6%인 9,824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신용불량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기업들의 채용 기피다. 신용불량자들을 ‘자기 관리 능력이 취약한 사람’으로 낙인 찍는다. 중견기업 인사 담당자는 “딱한 처지는 이해한다”면서도 “회사 입장에서는 똑 같은 조건이면 금융 기록이 깨끗한 사람을 뽑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당사자들의 소극적인 구직 활동도 문제다. 사회적 편견과 잇단 취업 실패로 인해 지레 겁을 먹고 구직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운수 업종에서 조직 퇴직해 빚으로 생활비를 대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최종원(48ㆍ가명)씨는 “퇴짜 맞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젠 회사에 직접 찾아가 지원서 낼 자신감이 없어졌다”며 “팩스나 이메일로만 입사 지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렵게 취직을 해도 난관이 적지 않다. 동료들이 알까 봐 조마조마하다. 지난해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의류회사에 들어간 김영희(30ㆍ여ㆍ가명)씨는 입사 두 달 만에 그만 뒀다. 사무실로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 때문이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 직전 자신의 신용카드에서 돈을 빼 쓰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된 그는 “동료들 얼굴 보기 부끄러워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용불량자들이 가는 곳은 조건을 별로 안 따지는 단순 일용ㆍ노무직이다. 자기 능력이나 경력보다 한참 낮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단순 일용ㆍ노무직에 종사하는 신용불량자들은 높은 이직률과 고용불안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영욱(34ㆍ가명)씨는 회사를 운영하는 부친의 사업비를 대다가 신용불량자가 돼 현재 옷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최씨는 “아직도 족쇄를 못 벗어났지만 직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면서도 “다만 언제까지 이런 단순 서비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최씨의 전공 분야는 전산이다.

전직지원 서비스업체 제이엠커리어의 서용원 팀장은 “능력은 충분한데도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신용불량자 취업을 위해서는 당사자의 자신감 회복과 함께 기업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 "구직과정서 먼저 신불자 고백할 필요 없어"

취업 과정에서 구직자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회사가 알 수 있는 경로는 대략 세 가지다. ▦구직자가 미리 말하는 경우 ▦회사가 신용정보 조회를 하는 경우 ▦금융기관이 급여 가압류를 하는 경우 등이다.

전문가들은 “구직자가 굳이 먼저 신용불량자임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미리 ‘이실직고’해 손해 보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못 구해 빚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박정호(27)씨는 “면접관들이 당연히 내 정보를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털어놓았다가 다 잡은 취업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고 후회했다.

대기업과 대부분의 중견기업은 채용 단계에서 신용평가기관 조회를 통해 구직자의 신용상태를 확인, 신용불량자를 걸러 낸다. 그러나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이 채용의 결격사유가 되는 것은 지나치다.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의 김수경 컨설턴트는 “경리 등 돈을 다루는 업무에서는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면서 “과소비 등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신용불량자와 사업 실패 등 어쩔 수 없이 신용불량 딱지를 달게 된 사람은 구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기관의 급여 가압류도 걱정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부터 월급이 120만원 미만일 때는 가압류하지 못하게 했다. 120만원 이상일 땐 최저생계비(120만원)를 제외한 금액까지만 가압류 할 수 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신용회복지원자로 확정되면 취업 때 유리하다. 큰 고민 중 하나인 회사의 신원보증보험 가입 요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지원자는 다른 절차 없이 서울보증보험이 발급하는 신원보증보험 가입을 신청할 수 있다. 반면 일반 신용불량자는 신원보증보험 가입이 매우 까다롭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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