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협상’형식이긴 하지만 노동ㆍ환경 분야와 관련한 미국의 신통상정책 수용여부에 대한 협상에 나서긴 하되 적극적으로 반대급부를 얻어낸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사실상 재협상이나 마찬가지인 추가협상에 대한 국내 여론의 반발이 변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8일 미국의 신통상정책 수용 요구에 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 “추가협상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추가협상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재협상 불가’라는 지금까지 정부의 입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부는 11일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신통상정책에 합의한 이후 줄곧 “재협상은 없다. 협상결과의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강조해 왔다.
이 당국자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 주는 대신 반대급부를 많이 얻어 내면 된다”며 “적게 주고 적게 받는 협상은 못하는 협상이고, 많이 주고 많이 받는 협상이 잘하는 협상이다”고 말했다.
이는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미국 의회가 요구하는 신통상정책을 추가 반영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추가 협상에 적극 임하겠다는 것은 추가협상이 사실상 재협상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의 발언에서도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김 대표는 이날 한국능률협회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미국이 한미 FTA에 대해 공식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양국에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 일단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방적 재협상 요구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설명이 붙긴 했지만 당초 입장에 비해 재협상 가능성을 상당히 열어 놓은 것이다. 앞서 김 대표는 17일 “미국이 일방적인 내용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면 협상을 깰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정리는 미국 행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 의회의 주장을 전면 거부하기는 힘들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 행정부와 의회의 신통상정책 합의 이후 국내에서는 정부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FTA 협상의 파트너인 미 행정부와 상대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가 ‘재협상 불가’원칙과 함께 “어떤 경우에도 협상 결과의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신통상정책의 대체적인 내용이 파악되면서 ‘우리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점도 정부의 부담을 다소 덜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권ㆍ환경권 보호 및 강화와 같은 신통상정책의 원칙 자체가 ‘인권ㆍ환경 보호’명분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권 분야 등에서 미국이 한국에 비해 미흡한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요구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협상 테이블에 나갈 경우 정부가 지게 될 정치적 부담이다. 소강 상태인 한미 FTA 반대 여론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재협상에는 참여하되 우리 쪽이 주도권을 갖는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많이 주고 많이 받는 협상”을 강조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신통상정책 요구 수준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이 경우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서 제시할 요구사항으로는 전문직 비자쿼터, 의약품 관련 지적재산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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