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의 공룡 같은 식욕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사모펀들은 14일 미국의 ‘빅3’ 자동차 업체인 크라이슬러를 삼킨 데 이어 16일에는 150년 전통의 세계 최대 콘텍트렌즈회사인 바슈롬과 정보기술(IT)업계의 거인 액시엄까지 손에 넣었다.
이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동원한 자금은 크라이슬러에 74억달러, 바슈롬에 45억달러, 액시엄에 22억달러 등 140억달러를 훌쩍 넘는다. 엄청난 자금력과 첨단 기업 인수ㆍ합병(M&A) 기술을 앞세워 번듯한 대기업을 모두 정복할 기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지난해 리콜 사태로 몇 차례 곤혹을 치른 바슈롬이 사모펀드 와버스 핀커스에 매각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와버스 핀커스는 현금 36억7,000만달러를 지급하고 부채 8억3,000만달러를 맡아 총 45억달러에 바슈롬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콘텍트렌즈의 강자로 군림하던 바슈롬도 지난해 리뉴 등 일부 브랜드가 실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대거 리콜을 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2,500만달러의 보상금이나 1,900만달러의 손실도 부담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타격은 땅에 떨어진 신뢰와 명성이었다. 여기에 아시아와 남미 사업부에서 회계부정 사실까지 적발되면서 기업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이에 앞서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서비스기업인 액시엄도 16일 실버레이크 파트너스와 밸류액트 캐피탈 파트너스란 사모펀드에 넘어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매각가격은 16일 종가에 14% 프리미엄을 붙인 22억4,000만달러였다.
올 들어 사모펀드들은 대대적인 IT기업 사냥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KKR)가 퍼스트 테이터를 이수하기로 합의했고, 며칠전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서버러스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어필리에이티드 컴퓨터 서비스와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액시엄은 올들어 사모펀드가 M&A한 IT기업 중 3번째 규모다.
올해 M&A는 사모펀드가 주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올 1분기 M&A 계약(1조1,300억 달러) 중 사모펀드가 성사시킨 규모는 약 15%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버러스의 크라이슬러 인수 등 최근의 잇단 M&A를 감안하면 약 3,700억 달러에 달한다.
양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KKR과 블랙스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KKR은 2월 하순 텍사스퍼시픽그룹과 함께 미 텍사스 지역의 최대 전력회사인 TXU를 450억 달러에 인수하는 사상 최대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2월초에는 블랙스톤이 미 최대의 부동산회사인 에쿼티 오피스 파트너스를 39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 같은 사모펀드의 맹위로 산업질서가 교란되고 금융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연초 이래 독일 등 일부 유럽국이 사모펀드를 포함한 광의의 헤지펀드 규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였다.
미 의회도 사모펀드의 공기업 인수 시 노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초점을 둔 조사에 착수했다.
하원 재무위원회의 바니 프랭크 위원장은 16일 열린 청문회에서 사모펀드의 M&A와 관련, “소수의 투자자가 특별한 거래를 통해 수 천만 또는 수 억 달러의 이익을 보는데 반해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해고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이런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될 경우 의회가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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