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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라이프 - 티칭 그랜마 "얘야, 이왕 손주 봐주는 거 공부도 챙겨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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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라이프 - 티칭 그랜마 "얘야, 이왕 손주 봐주는 거 공부도 챙겨주련?"

입력
2007.05.1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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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박 16일의 미국 동부 여행을 마치고 지난 14일 귀국한 박내수(62ㆍ서울 송파구 잠실동)씨가 이튿날 눈뜨자마자 곧장 찾은 곳은 첫째 딸 김가현(36ㆍ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씨의 집.

날마다 할머니를 그리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는 손녀 서현아(5)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평소 일주일에 2~3번씩 딸의 집을 방문해 손녀의 독서지도, 피아노 강습 등을 도맡아 하는 박씨는 오랜만에 손녀와 10여권의 동화책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동화구연을 하듯 동물 흉내를 내가며 자상하게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 무릎 위에서 현아양은 “엄마는 영어책만 읽어 주시는데 할머니는 재미있는 동화를 들려주시니 좋다”며 즐거워했다.

‘티칭 그랜마(Teaching Grandma)’가 뜨고 있다. 손주들의 교육을 전담하며 일종의 ‘교육 컨설턴트’로 맹활약하는 할머니들을 말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맞벌이가 보편화돼 조부모 양육가정이 많은 것이야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티칭 그랜마는 이와는 엄밀히 구분된다. 살림이 아닌 손주들의 교육을 맡아 사교육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의 매니저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게 이들의 몫이다. 할머니의 역할이 단순 육아에서 좀 더 전문화된 교육 도우미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사는 전영숙(63)씨는 10여년째 두 딸의 자녀 4명을 맡아 유치원 행사부터 학원 스케줄 조정에 이르기까지 교육 도우미 역할을 했다. 얼마 뒤에는 막내 아들의 자녀를 돌보기로 예약돼있다. 초등학교 손주들의 논술교육을 위해 요즘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죄와 벌> 등의 책을 옛 기억을 되살려 읽고 새로 공부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딸과 며느리의 아이를 동시에 키우고 있는 김광신(57ㆍ서울시 송파구 송파동)씨는 자주 자녀교육 동영상CD를 보며 손주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쓴다. 영어조기교육이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아이와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영어책을 다시 펴드는 할머니들도 많다. 동화구연은 필수다. 실제 한국동화구연지도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동화구연지도사 과정을 찾는 노년층이 2배 이상 늘었다.

티칭 그랜마의 등장은 전반적으로 고학력 할머니들이 많아지는 추세와 관련있다. 이들은 자신은 전업주부로 살았어도 딸이나 며느리의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기위해 기꺼이 손주들의 교육담당 매니저 역할을 떠맡는다.

한병철 CDI청담어학원 분당브랜치 부원장은 “분당이라는 지역 특성상 고학력 할머니들이 많다”면서 “덕분에 회사업무로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가 손주의 교육을 직접 챙기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부원장은 “손주를 위해 해외 영어 연수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설명회에 참석하는 할머니들도 드물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교육 올인’ 트렌드도 한몫 한다. 미취학 아동마저도 영어, 발레, 미술 등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현실에서 자칫 인성교육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어서다.

김가현씨는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아이 교육에 집중하다 보면 작은 아이에게는 소홀해진다. 다행히 할머니가 아이의 지능발달이나 인성교육을 전담하다시피 해주니까 두 아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티칭 그랜마 현상은 노인문제 차원에서 보면 고령화에 따른 자아실현 수단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계층별 라이프스타일 연구를 하고있는 서일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노인들이 여행 등 여가 활동만으로 인생의 참 의미를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할머니들도 그 동안의 인생 경험을 활용해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은퇴한 CEO가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제2의 인생을 찾듯 육아라는 전문지식을 사회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는 노년층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더욱이 이들의 육아 활동은 또 다른 노동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창조적인 활동으로 볼 수도 있다. 박내수씨는 “아이와 영어로 된 책을 읽고 교육용 비디오도 함께 보다 보니 생기 있는 아이의 에너지를 받아 오히려 내가 더 즐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보다 도움을 청하는 것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조부모 세대가 손주들의 교육 매니저로 나서는 현상은 정부 차원에서 노인인력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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