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당경쟁으로 부실만 키우는 것인가, 산업부문으로 자금 흐름이 정상화되는 것인가.
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7년 1분기 예금은행의 산업대출 동향’에 따르면 1분기 예금은행 산업부문 대출은 15조2,000억원으로 4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눈길을 끄는 건 산업부문 대출이 종전 최고(17조원)를 기록한 2003년 1분기와 상황의 유사성이다. 신용카드 남발 등으로 2002년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불안을 느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옥죄이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넘치는 유동성을 산업부문 대출로 돌렸다.
당시 가계대출 증가는 관성에 의해 03년 상반기까지 이어졌지만, 그 해 3월 카드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고 11월에는 LG카드 위기로 이어지며 이른바 카드대란의 절정을 맞게 된다. 최근 산업부문 대출 증가가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급증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의 결과라는 점에서 유사한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올해 1분기 산업대출 15조2,000억원 중 15조원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으로 흘러 들어갔고, 설비 투자용 자금 수요도 크게 늘어 침체된 산업 전반에 활력이 불어넣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2003년에도 1분기 이후 산업대출의 증가는 GDP 성장으로 이어져 2004년 5%대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문제는 현재의 기업대출 증가가 경기회복을 확신한 기업들의 자발적인 대출이라기보다는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기 대출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1분기 대출 증가액 중 11조원이 기업 운전자금이라는 사실이 이런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대출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1분기 대출 현황을 보면 산업별로 제조업과 건설업이 크게 늘었고, 자금 용도별로는 시설자금 증가가 눈에 띤다”며 “여신의 건전성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금융당국은 기업대출 옥죄기에 나서고 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16일 은행장들을 상대로 대출경쟁 과열과 쏠림 현상을 경고하자 은행들은 일제히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은 자체적으로 대출 때 건전성 심사를 강화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고, 신용카드 영업도 자제하기로 했다. 감독당국은 향후 시장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대출 증가세가 계속되면 은행별 실태 점검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은행 입장에서는 쌓이는 돈을 손실을 입으며 장기간 금고에 넣어둘 수는 없기 때문에 감독당국의 경고는 일시적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며 “유동성 과잉 현상이 계속되면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만큼 금융기관의 해외투자 활성화 등 유동성을 줄이는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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