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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57년 만에 푼 '망향의 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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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57년 만에 푼 '망향의 恨'

입력
2007.05.1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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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사리원 길을 걸어간다/풀벌레들이 즐겁게 울고/…/사과가 발갛게도/잎 부럽지 않게 붉었다/…/나는 너무나도 자유스럽게, 고향의 빛을 닮아간다/…’(고형렬의 <사리원길> )

1997년 어느날 고향 땅을 밟았다. 47년이 걸렸다. 까까머리 중학생은 환갑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됐다. 고향 집은 사라졌지만 어릴 때 파놓은 우물도, 별을 쫓아 내달리던 뒷산도 그대로였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더니 고향은 난리를 피해 도망친 날 기다렸구나, 반세기 가까이 객지에서 살아온 긴 세월의 골을 단숨에 메우는구나. 아, 사리원 길.’

삶과 사업의 신앙이었던 선친(안종삼)은 영정으로 남았다. 용케 살아남은 주름투성이 누이를 부둥켜 안고 통곡으로 한(恨)을 녹였다. 봉분도 없는 부모의 묘소를 어루만지다 문득 맹세를 하고 말았다. “부모님이 잠드신 고향에 꼭 공장을 세우겠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생전에 다시 만나자”던 첫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막둥이는 두 번째 맹세만큼은 기어이 지키고 말았다. 부침이 심했던 남북관계, 좌절과 실패, 시간 끌기, 잠정중단 등 우여곡절을 신의로써 차근차근 풀어나간 결실이었다. 그는 “망향의 한은 내 자신만이 풀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침대는 과학’이란 광고카피로 ‘침대를 가구’로 믿었던 수많은 사람을 헷갈리게 했던 ㈜에이스침대의 창업주 안유수 회장의 얘기다. 그는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실향민이다. 그의 각별한 고향 사랑 덕분에 에이스침대는 16일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와 자본금 2,000만달러의 합영회사 ‘사리원에이스침대가구’설립계약을 최종 체결했다.

사리원 공장은 총대지 3만6,000평(건물면적 7,000평) 규모로 다음달부터 공사에 들어가 내년 7월 완공된다. 남측의 자본ㆍ기술, 북측의 노동력으로 침대와 침실용 가구를 생산해 북한 내수시장과 중국 동북3성, 러시아시장을 공략하게 된다. 북한의 주요도시 8곳에 전시장 10곳을 개설하는 등 판로도 마련했다.

공장설립 자체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의미가 깊다. 사리원에이스침대가구는 국내 최초로 남북간 육로를 통한 물자와 인원의 상시왕래를 보장 받은 합영회사다. 에이스침대 관계자는 “10년 동안 대북사업을 추진해오면서 합영사업과 관련해 어려움이 많았지만 고향 지원사업 등 변치 않는 안 회장의 사업적 신뢰를 북측이 높이 평가해 육로통행에 합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이나 남포, 평양이 아닌 곳에 공장을 짓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북측은 당초 개성공단 등 다른 지역을 권했지만 안 회장은 끝까지 고향 사리원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리원은 평양 남쪽 60㎞, 개성 북서쪽 120㎞ 지점에 위치해 현재로선 불리한 입지조건이지만, 경의선이 지나는 곳이라 향후 발전가능성은 높다.

육로통행 요구와 사리원만 고집한 것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매년 될 듯 말듯한 분위기 때문에 증권가에선 실현불가능한 사업으로 인식되기도 했고, 불확실한 남북관계 때문에 계약과정이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안 회장은 “힘들 때마다 사무실에 걸어놓은 부모님의 묘소 사진을 보며 ‘한 우물만 파라’던 선친의 가르침을 되새겼다”고 했다.

안 회장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16세로 혈혈단신 월남, 한때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전전하기도 했다. 이후 상경해 63년 침대사업의 가능성을 믿고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 에이스침대공업사(에이스침대의 전신)를 설립, 지금의 국내 최대 가구업체(지난해 매출 1,224억원)로 성장시켰다.

이날 개성공단에서 합영회사 설립조인식을 가진 안 회장의 장남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은 “실향민으로서 부친의 애틋한 향수가 없었다면 이번 사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합영사업의 성사를 계기로 북한의 침대가구 산업이 발전하고 더 많은 합영회사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리원에이스침대가구 공장 개요

-위치 : 북한 황해북도(옛 황해도) 사리원시

-지분 : ㈜에이스침대와 북한의 광명성총회사가 7:3 비율로 출자

-특징 : 남북간 육로를 통한 물자 인원의 상시 왕래가 가능한 최초의 합영회사

-건물 : 2007년 6월 착공, 2008년 7월 완공

-규모 : 자본금 2,000만 달러, 총 대지 3만6,000평(건물면적 7,000평)

-인력 : 350명(현지 채용)+설비관리 등 남쪽 파견인력

-제품 : 침대와 침실용 가구(화장대 협탁 등)

-시장 : 북한 내수시장 및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 등지

-마케팅 : 북한 8개 주요도시에 전시장 10곳 개설(착공과 동시에 평양 통일거리, 광복거리, 문수거리 3곳에 판매전시장 오픈)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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