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는 가장 동양적 고도(古都)라고 생각된다. 나지막한 산들과 고요한 강 사이에 대숲이 깔린 이 도시만큼, 동양인의 정서를 자아내는 곳이 없을 듯하다. 오래 된 일본식 기와집들이 다정한 거리에는, 유명 사찰과 문화유산이 곳곳에 보존돼 있다. 도
쿄나 오사카는 별로 그립지 않아도, 교토는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다. 우리 경주를 공들여 가꾼다면 그런 도시가 될 듯도 하다. 그 교토에도 현대화 물결이 밀려와 고민을 낳고 있다. 마침내 최근 교토시는 신축 건물은 10층 이하로 제한하고, 옥탑광고물과 네온사인 간판도 금지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 오래 된 건물이 없는 도시는 과거를 갖지 않은 인간과 같다고 한다. 고도이면서 국제적 도시를 꿈꾸는 중국 상하이도, 과거를 파묻어 가는 과도한 현대화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영어와 불어 등으로 된 간판 만들기가 성행해, 내국인이 알아볼 수 없는 외국어 간판이 범람하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시는 이 간판들을 바꾸라고 지도하고 있다. 간판과 광고판에 꼭 외국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한자를 병기하라고도 주문했다.
▲ 가게마다 ‘크고 높게, 눈에 띄게’ 설치해온 우리 간판은 대표적 불량 문화다. 다행히 올 들어 지방자치단체가 길거리 간판정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보기 싫은 간판은 퇴출 시키거나 개선비용을 지원해 주고, 아름다운 간판에는 상을 주기로 했다. 강남구가 간판관련 고시를 제정한 것은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신길 재정비촉진지구에 광고물표시 가이드라인을 적용, 업소 광고물을 1개씩만 허용할 계획이다. 이런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것 역시 전국에서 처음이다. 경기 파주시는 도로 표지와 광고물 등의 디자인을 정비하기 위해 홍익대와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 불량간판이 가져오는 시각공해는 도심 번화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뻗어나간 도로변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압축 성장이 가져온 이런 졸부 이미지로 인해, 제대로 된 국격(國格)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고, 평창 동계올림픽과 여수 세계박람회 등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 국제행사들을 앞두고,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 간판과의 전쟁을 마무리 짓는 국제적 품격과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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