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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족, 행복사회-이제는 가족입니다] 과천지역 입양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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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족, 행복사회-이제는 가족입니다] 과천지역 입양가족모임

입력
2007.05.1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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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 떳떳하게 알릴수록 아름답게 자라요"

남매를 키우던 강명순(48) 씨는 6년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깊은 슬픔에 잠겼던 그는 불현듯 생전에 아들이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나 동생 갖고 싶어”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이뤄주고 싶었던 강 씨는 갓난아기였던 창윤이(6)를 입양했다. 착하게 커가는 창윤이를 보면서 아픔은 잊혀져 갔다. 뿐만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기쁨, 아이를 돌보는 성취감은 몇 곱절이나 컸다.

그 뒤 강 씨는 영윤이(4), 선현이(3)를 차례로 입양해, 맏딸 경희(19)씨를 포함해 네 자녀의 어머니가 됐다. 보람도 그만큼 많아졌지만, 감당해야 할 어려움도 늘었다. 우선 교육비가 만만치 않았다.

세 아이를 유치원이나 놀이방에 보내는 데 드는 돈만 한 달에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미취학 입양아동의 보육료에는 국가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비용은 고스란히 부모 부담이다. 또 막내 선현이는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식탐 증세를 보이고 있다.

보육시설에서 일정기간 살다가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에게는 흔한 증상이다. 그러나 입양아의 적응치료에 대해서는 의료비 감면 혜택이 없어,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을 경우 비싼 치료비(30분당 5만원 가량)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한다.

강 씨는 “또 당시에는 입양할 때마다 입양수수료(200만원 정도)를 개인이 내도록 되어 있었다”며 “정부는 말로만 입양을 장려한다고 하고 지금껏 지원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 강 씨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입양가족들의 모임이었다. 강 씨가 참여하는 한국입양홍보회 소속 과천지역 모임은 서울, 인천과 함께 입양가족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14 가족은 3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여 아이를 함께 돌본다. 한걸음 더 나아가 건강한 입양을 장려하는 홍보활동이나 편견해소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 강 씨는 “모임이 없었다면 입양한 후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며 “우리들은 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을 배우고, 힘든 부분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공개입양이 이 모임의 뜨거운 화제다. 공개입양이란 입양사실을 아이와 주변에 떳떳하게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가 겪을 정체성 혼란과 주위의 편견을 우려해 입양사실을 숨긴다. 공개입양을 실천해본 과천모임 가족들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현실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공개 입양된 아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자신을 낳은 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게 된다. 이 때 아이들의 궁금증에 대해 부모가 솔직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출산으로 낳은 아들 외에 딸 두 명을 더 입양해 키우는 신주련(46) 씨는 어느날 초등학생인 딸아이에게 학교 숙제라며 카드 한 장을 받았다.

그 카드에는 “낳아주신 부모가 왜 날 길러주지 못했는지 궁금하다”고 적혀 있었다. 신 씨는 “나도 궁금하다. 네가 크면 낳아주신 부모가 만나준다고 하니 그때 같이 물어보자”고 답장을 써줬다. 신 씨는 “나중에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선생님이 자기가 쓴 카드와 내가 써준 답장을 번갈아 읽어주며 잘 썼다고 세 번이나 칭찬하셨다면서 너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그 후 모녀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음을 물론이다.

출산으로 낳은 아들 한명과 입양 및 위탁으로 얻은 자식 6명을 함께 키우는 한연희 (51) 씨는 가슴 철렁했던 순간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11살이 되었을 때 생모를 직접 만났다.

얼마 뒤 아이의 휴대폰 주소록에 ‘Real Mom’(진짜 엄마)이라는 이름이 떴다. 한 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러 보았다. 한 씨의 번호였다. 한 씨는 “그때 내가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며 “길러준 엄마에 대한 애정은 평생 가는 것이더라”고 말했다.

입양부모들이 스스로 돕는 것도 한계는 있다. 입양 문화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4자녀를 모두 입양해 키우는 정선자(45) 씨는 “미취학 입양아동의 보육비 지원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계속해서 관련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고 있지만, 3년째 거부당했다”며 “입양을 선택한 부모들이 보통 2명 이상의 자녀를 입양하기 때문에 교육비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한 씨는 “올해 공무원부터 도입하기로 한 입양휴가제(14일)를 일반인에게 차별없이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입양부모 중 10%가 채 안 되는 공무원에게만 이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 한 씨는 일반 기업들의 반발로 노동부 등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지나치게 혈연을 강조하는 초등학교 교과서,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입양아동에 대한 지원 없음도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문의 (02) 503-8301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 최석춘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

“입양은 축복입니다.”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인 최석춘(미국명 스티브 모리슨ㆍ51ㆍ사진)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우주항공연구소(Aerospace Corporation)에서 17년째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강원 동해시 묵호역 굴다리 밑 판잣집에서 살았던 그는 술에 찌든 아버지, 매맞는 어머니를 보며 살았다. 끼니는 거르기 일쑤였으며 다리를 저는 장애로 생활도 불편했다. 5살 때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갔다. 수년 동냥 생활 끝에 13살 되던 해 그는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에 들어갔다.

1970년 미국 생물학자인 존 모리슨씨가 그를 입양함으로써 그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그는 “가정이 생긴 뒤로 갑자기 공부, 특히 수학에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79년 퍼듀대 우주항공과를 졸업했으며, 미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 받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축복을 나눠야겠다는 생각 끝에 1999년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를 설립했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의 해외입양 문제를 다룬 보도를 보면서 해외입양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편견을 바꾸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가 설립한 한국입양홍보회는 현재 17개 지역 1,000여 개 공개입양 가정으로 성장했다. 매년 전국입양가족대회, 입양의 날 행사를 주도하고, 입양가족들을 위한 캠프와 입양부모 교육, 일반 학교에서의 입양 반편견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8년 전 한국입양홍보회를 만들 당시에는 비공개입양 가정이 전체 입양가정의 99.5%나 되었으나, 지금은 약 75% 정도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입양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는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어른중심의 입양문화’.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면, 그 부모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입양을 갈 수가 없다. 18세가 될 때까지 따뜻한 가정을 만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보육시설에서 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6개월~1년간 부모로부터 연락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친권포기가 이뤄져 입양이 가능하다. 그는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아동 중심의 입양’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에 오해성(미국명 조셉ㆍ10)군을 입양해 출산을 통해 얻은 3명의 딸과 함께 키우고 있다. 오 군은 주의력결핍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조셉을 입양해 힘든 면도 있었지만, 이는 어느 누구의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멋진 미소를 가진 아이로 성장해 학교에서도 인기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때 아버지는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아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입양이건 출산이건 그 목적은 아이를 아름다운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준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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