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그의 삶이 못내 겸연쩍을 것이고, 평론가는 그의 시가 마음에 걸릴 것”이라고 책은 어떤 불화에 대해 언급한다(122쪽). 21세기 한국에서 시는 시고, 삶은 삶인가. 건널 수 없는 강이 사이를 가르고 있는가. 신예 평론가 이성우(41)씨의 첫 평론집 <시 + 인 들> (역락)은 시 너머 펼쳐지는, 우리 시대 시의 지평에 닿아 있다. 시>
제목은 ‘시’, ‘시+인’, ‘시 + 인 +들’ 등으로 한국의 시들이 외연을 확장해 가는 과정의 종점이다. 이 시대 대표적 시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의미망의 정체가 김춘수 안도현 강은교 유안진 등 시인 19명의 작품 분석을 통해 드러난다. <꽃을 벗어나는 가시 연꽃> (김선우), <얼음 신발 위로 벼랑 위를 걷는 여자> (신달자) 등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부추기는 작품론이다. 얼음> 꽃을>
대중적으로 지명도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호출해낸 덕에, 일반인도 평론 읽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미덕이다. 특히 시대적 관심인 웰빙을 가리켜 “자족적이며 완전무결한 생의 이데올로기가 된 듯”하다며 여러 시와의 관계를 논한 대목은 책이 우리시대 읽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같은 동시성은 첨단 과학을 미학적으로 논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우리에게 무한한 가상 공간을 주었지만 그 대신 내면 공간이라는 또 하나의 무한 공간을 없애 버리고 있”는 존재, 바로 “유비쿼터스라는 새로운 신”(266쪽)에 의해 잠식당한 이 시대를 향한 전언들을 책은 여럿 비축해 둔다.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 곧 문학”이라며 공고한 신뢰를 보낸다. 단, 그 마술은 “슬퍼하는 능력”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268쪽).
슬픔의 능력을 상실해 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책의 시선은 그래서 착잡하다. “웰빙족들이 까맣게 잊어 버린 ‘건강한 슬픔’ 혹은 ‘슬픔의 건강’을 챙겨 두었다가 그들에게 나눠 주는 일”(260쪽)이 이 웰빙 시대에도 시가 존재해야 할 이유라는 주장이다.
박사 학위 논문 작업과 겹쳐 난산한 책이다. “이 시대 문학이란, 예를 들어 아우슈비츠 학살 때 눈물을 흘리게 하는 힘이에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으로, (타인을) 슬퍼하도록 만드는 거죠.” 그는 “우리 시대 시인들은 시를 통해 사회적 권력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젊은 시인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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