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홀랑 없어지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던 어려운 시절이 10년 전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지금 옛날 이야기쯤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의 연쇄도산, 대량 실업, 국가신용 붕괴 등은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사람들의 희망을 모두 깨어 버렸다. 직장이 축소되거나 문을 닫아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앉았고 가정이 파탄 났다.
생각 있는 시민운동가와 기업가, 학자, 언론인들이 이러한 위기의 해결책을 숲에서 찾고자 했다. 당시 숲은 전국에 걸쳐 있었지만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그래서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방치된 숲도 가꾸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도 주자는 취지로 1998년 3월 18일 문국현 유종성 윤여창 이은옥 이형모 전영우 정용호 조연환 최열 등이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을 결성했다.
당시 숲과 관련한 인식에는 두 가지 모순된 측면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방치해놓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지 하나 꺾어서는 안 되는 금기로 묶어 놓고 있었다. 나는 우이령보존회 사무국장으로 여러 시민단체의 대표자와 현장 모니터링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모르던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많은 전문가, 학자 그룹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간 나무는 심어만 놓으면 그냥 무럭무럭 자라나는 줄 알았었다.
자연 생태에서 성장한 숲은 스스로 조절, 성장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전국토가 초토화한 뒤 국가 사업으로 나무를 인위적으로 빼곡하게 심었기 때문에 간벌과 가지치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30여년에 걸친 방치로 나무가 일제히 성장하는 바람에 영양이 결핍하고 햇빛이 차단되면서 식생 하층은 오로지 두꺼운 나무 잎 층을 이르고 있었다. 비가 와도 빗물이 표면으로 흘러가 땅은 단단한 돌과 같았고 애써 심은 나무는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 학자들은 이를 녹색사막이라고 부른다.
우이령보존회에서는 김인식 초대 회장이 생명의 숲 감사로 참여했으며 나는 실무위원으로 참여해 매주 모임을 가졌다. 생명의 숲은 처음에는 숲을 가꾸는데 주력했으나 업무가 세분화했으며 나는 현재 모델숲위원회와 숲탐방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장으로 마을 축제나 휴식공간으로 사용한 마을숲을 발굴, 복원하는 마을숲위원회에서는 내가 위원장이다.
숲 가꾸기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전영우 국민대 교수와 만나 그의 명저 <숲과 한국문화> 를 냈고 숲 해설 기초 교재인 <숲 체험 프로그램> 도 출판했다. 숲> 숲과>
거기서 나아가 나는 숲과문화연구회에도 참여했으며 <숲과 자연교육> <숲과 종교> <숲과 임업> <숲과 미술> <산과 우리문화> <숲과 물 그리고 문화> <우리겨레의 삶과 소나무> 등 숲과 문화총서를 냈다. 숲과 관련한 다양한 책 가운데 특히 자랑할 만한 것이 <숲을 걷다> 이다. 숲을> 우리겨레의> 숲과> 산과> 숲과> 숲과> 숲과> 숲과>
감히 수문출판사의 정신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말할 수 있는 도서로 녹색자금을 받아 정성을 쏟았다. 차윤정 김태정 조태동 유정칠 박봉우씨 등 숲과 생태 전문가, 이호신 이성부 안정효 윤후명 전상국 심산 이종은 최성각 등 문화언론인, 김영도 남난희 박그림 유성수 박성실 박용수 김우선 등 산악인이 필진을 구성했다.
나는 이렇듯 즐거운 마음으로 숲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 우리사회의 밝은 미래는 숲에 달려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수문출판사 대표ㆍ우이령보존회장ㆍ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동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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