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감식 결과 범죄자는 제3의 인물로 판명났는데도 강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다니…’
본드를 상습적으로 흡입하던 임모(20)씨는 지난해 5월 여성 출장 마사지사를 상대로 특수강도를 저지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수사과정에서 임씨에겐 인근에서 발생한 1건의 출장마사지사 강도 사건과 2건의 부녀자 상대 강도ㆍ강간 사건 혐의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임씨는 법정에서 “부녀자 상대 강도ㆍ강간은 내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피해자가 제출한 옷에 묻은 정액과 임씨의 유전자가 서로 다르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도 법원에 제출됐다.
하지만 법원은 항소심에서도 임씨가 4건의 범죄를 모두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달랐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13일 임씨에게 징역 장기 5년, 단기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판결문에는 “유전자검사나 혈액형 검사 등 과학적 증거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실제론 하급심의 심리 잘못을 질타한 것이라고 대법원측은 설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대법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유전자 감식결과는 강간범죄에서 중요 증거로 사용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임씨를 변호한 국선변호인이 1, 2심 재판 과정에서 범인과 임씨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주장하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전자 감식결과가 수사기록에 첨부돼 있었기 때문에 판사가 기록검토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실수가 항소심에서도 되풀이됐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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