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물러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54)의 재임 10년을 놓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1997년 좌파 노동당의 이념 틀을 벗어난 친시장적 실용노선 '제3의 길'을 내걸고 집권한 블레어는 흔히 경제를 비롯한 국정 운영에 뛰어났으나, 미국을 추종한 이라크 개입 실패로 빛이 바랜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경제성장'과 '이라크 실패'를 대비시키는 것은 특히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이라크전과 참전의 정당성을 신봉하는 언론조차 이런 도식을 따르는 건 우습지만, 복잡한 사안을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배려일 것이다.
■ 영국 여론의 평가도 호의적이다. 진보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유권자의 60%는 블레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 노릇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58%는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보았다.
이게 모호하면, 보수언론의 평가를 참고할 만하다. 더 타임스의 정치 칼럼니스트는 블레어가 애틀리 처칠 대처보다는 못하지만 메이저 캘러헌 이든 더글러스흄 히스 윌슨 전 총리보다는 나은 것으로 역사학자들이 평가할 것이라며, 10점 만점에 평점 6.5 점을 주었다. 역대 총리 가운데 중상급이다.
■ 실제 2004년 리즈 대학이 역사ㆍ정치학자 139명에게 물은 결과, 블레어는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재건을 이끈 애틀리 전 총리와 처칠, 로이드 조지, 대처, 맥밀런에 이어 높은 평점을 받았다.
역사학자들의 진보적 잣대를 고려하면, 좌파이념을 벗어난 블레어가 탁월한 국정능력을 보인 결과다. 물론 훨씬 냉정한 평가도 있다. 블레어는 보수당 정권이 18년 동안 일궈놓은 경제를 물려받아 역대 어느 총리보다 유리하게 출발했다. 이를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잘 관리했을 뿐, 근본적 개혁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탓에 말년에 급속히 추락했다는 풀이다.
■ 이에 따라 블레어는 두드러진 비전 없는 범상한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성공요인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흔히 말하는 탤런트 같은 용모와 달변, 정치수완 등이 아니다. 대처 이래 보수당 정권이 오로지 성장을 추구하면서 남긴 계층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두루 보살피는 '타협과 관용'을 실천한 것이 무엇보다 돋보이는 덕목이라는 평가다. 우리 사회는 늘 그렇듯이 엉뚱한 교훈을 되뇌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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