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상대로 직접 보복에 나선 재벌 총수에게 11일은 회한과 탄원, 낙담과 수모로 이어진 긴 하루였다. 김승연(55)한화그룹 회장은 12일 새벽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으로 향하며 “담담하다”고 말했지만 낙심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취재진을 향해 “저처럼 어리석은 아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전하면서도 구속을 예감이나 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경찰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강경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김 회장은 실질심사 예정시간보다 12분 이른 오전 10시18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에 나타났다. 그 동안 언론을 통해 재벌 회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집중 부각돼 심적 부담을 많이 느낀 탓인지 경찰조사 때보다 야윈 모습이었다. 남대문경찰서가 준비한 승합차에서 경찰관들을 따라 내린 김 회장은 굳은 얼굴로 70여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여 포토라인 앞에 섰다. 심경을 묻는 질문에 “다시 한번 국민들 앞에..”라고 사과의 말을 전하려 했지만 경찰이 갑자기 김 회장을 데리고 법원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취재진이 몰리면서 경찰과 취재진 사이에 한때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광만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실질심사에는 경찰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의 송규종ㆍ최성환 검사가 출석, 김 회장이 청계산과 북창동 유흥주점에서 피해자들을 감금 폭행했다며 구속을 주장했다. 심리는 변호인단의 요구에 따라 수사 경찰관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행정법원장 출신의 우의형 변호사와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오세헌 변호사 등 3명의 변호인단과 김 회장은 청계산 폭행가담 혐의를 시인하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의 심리는 약 3시간 만인 오후 1시30분에 끝났고 이어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진모(40) 한화그룹 경호과장의 심리가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이 시간을 틈타 옆방인 318호 법정으로 분홍색 보자기에 쌓인 음식물이 들어가 김 회장이 늦은 점심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영장발부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서울중앙지검 별관 2층의 호송경찰관실에 머물렀다.
실질심사가 끝난 뒤 이 부장판사는 “(영장발부 여부는)너무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밤 10시를 넘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자 법원 주변에서는 영장이 기각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한화그룹 관계자들도 “통상 심리가 길어지면 기각되는 것 아니냐”“범죄혐의를 시인한 것이 영장발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며 취재진에게 문의를 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밤 11시 직후 영장이 발부되면서 한화그룹측은 “올 것이 왔다”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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