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ㆍ1542~1607) 서거 400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활동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지금까지 일반인에게 서애는 율곡 이이의‘십만양병설’에 적극 반대함으로써 전쟁 발발의 원인을 제공하는 등 현실 감각이 뒤떨어진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은 정치적 반대파에 의한 모함이며 오히려 서애는 미증유의 전란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기득권을 혁파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개혁적 정치가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역사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 (역사의 아침)은 전쟁기간 중 도주하기 바빴던 임금과 양반 층을 대신해 정치 행정 군사 경제 등 국정 전반을 책임 있게 이끌어간 리더로서의 역량을 부각시킨다. 설득과>
책에 따르면 공납의 폐해를 막기위해 쌀로 세금을 통일하도록 한 대동법 등 각종 개혁법안이 서애의 손에서 나왔다. 대동법은 광해군 때 김육의 건의로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서애는 임란 중 작미법(作米法)이라는 이름으로 건의해 시행되도록 했다.
양반들이 군역의무를 지게 된 것도 대원군의 호포법이 최초가 아니라 서애가 전란 당시 제안한 속오군(束伍軍ㆍ양반부터 노비까지 혼성으로 편성한 군대)이 시초라는 것이다.
나아가 천민들도 종군을 조건으로 면천해주고 공을 세우면 벼슬까지 주는 신분타파책을 제안하는 등, 책은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희생한 서애의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서애를 기리는 학술대회와 다양한 추모행사도 잇따라 열린다. 1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서애 류선생 서세 사백주년 추모제전 학술대회’에서는 ‘서애 유성룡 경제정책론’(이헌창ㆍ고려대)‘서애 유성룡의 군사 정책과 사상’(오종록ㆍ성신여대)‘동아시아해역 국제경제질서와 임진왜란’(스가와 히데요리ㆍ요코하마국립대) 등 서애의 정치활동과 정책에 대한 평가가 다방면에서 이뤄진다.
15일 서애의 고향인 경북 안동의 안동시민회관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오영 교수가 ‘서애 유성룡의 경학사상의 심리적 성향’, 송재소 성균관대 교수가 ‘서애 선생의 시문학’을 각각 발표하는 등 서애의 학문적ㆍ예술적 업적을 조명하게 된다.
한편 12일 안동 하회마을에서 열리는 추모제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카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후손 등이 참석해 ‘400년 만의 화해의식도 펼쳐진다.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소장은 “신분ㆍ문벌을 뛰어넘어 인재를 파격적으로 배치하는 등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개혁조치를 단행한 현실주의 정치가로서의 서애의 면모가 부각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애의 생애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서애를 배출한 안동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집 <하회마을> (솔)도 발간됐다. 사진작가 황헌만이 30여년간 찍은 사진 670여컷에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와 전통문화연구가 정승모가 글을 붙였다. 하회마을>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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