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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만弗 바지소송 부부 웃음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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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만弗 바지소송 부부 웃음 되찾다

입력
2007.05.1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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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6,500만달러 바지 소송에 휘말린 미국 워싱턴의 세탁인 정진남(61)-정수연(56)씨 부부는 지난 2년 동안 몹쓸 악몽을 꾼 것 같다고 몸서리를 쳤다.

정씨 부부가 황당한 법정 분쟁에 말려든 건 2005년 5월. 정씨 부부가 운영하는 워싱턴 DC 노스이스트 소재 ‘커스텀(Custom) 세탁소’에 로이 피어슨씨가 “허리 사이즈를 늘려 달라”며 바지를 맡겼다. 가끔 들르던 고객이었지만 그가 변호사인 줄은 소송이 진행되고서야 알았다.

악몽은 며칠 뒤 피어슨씨가 바지를 찾으러 오면서 시작됐다. 그의 바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수연씨는 “그가 새로 옷을 사겠다며 1,800달러를 요구했다. 영수증을 갖고 오라고 했지만 안 갖고 왔다”고 말했다. 문제의 바지는 일주일도 안 돼 발견됐지만 피어슨씨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겼다.

피어슨씨는 영어 소통이 원활한 34, 29세의 두 아들에게 “5만 달러를 변상하면 소송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수연씨는 “내가 영수증을 갖고 오라 하니까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한마디로 괘씸죄에 걸렸다”고 씁쓸해 했다.

정씨 부부도 변호사를 구하기 시작했다. 한인 변호사들은 바지 사건이 하찮다고 생각했는지 기피했다. 피어슨씨는 매일같이 정씨에게 메일을 보내 사람을 질리게 했다. 숨 막히는 날들이 계속됐다. 정진남씨는 “어떤 날은 다 집어치우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단 10달러50센트밖에 들지 않는 바지 수선비용은 실랑이를 거치며 무려 6,500만달러로 부풀려졌다. 사업체의 부당한 처우 1건에 하루 최고 1,500달러를 요구할 수 있는 워싱턴 DC의 소비자 보호법을 적용한 것이다.

황당한 바지 사건이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되면서 정씨 부부는 유명세를 탔다. 미 주요 언론은 물론이고 영국 BBC에, 프랑스 방송 취재진까지 그의 가게를 찾고 있다. 주민들은 꽃을 들고 와 이들 부부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정씨 부부를 돕자는 취지로 인터넷 펀드도 만들어졌다. 이는 곧 비영리단체로 넘겨 운영될 계획이다.

“어떤 단골손님은 장거리 출장 중 전화를 걸어 힘내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하루 수십 통 전화해 위로를 건넬 때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따뜻한 격려 속에 부부는 웃음을 되찾았다. 세탁소도 예전처럼 운영하면서 6월 11,12일 예정된 재판일을 기다리고 있다. 정씨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당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용기가 필요함을 미국생활에서 배웠다”고 미소를 지었다.

워싱턴=미주한국일보 워싱턴지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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