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대는 한국영화의 탈출구를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위기’에는 쉽게 동의했지만 해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한 제작자는 “대안이 있었으면 이 지경까지 왔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하고,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적절한 기획, 적절한 제작비
한국영화제작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총110편의 한국영화가 만들어졌다. 들어간 제작비는 모두 4,442억원.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규모로 볼 때 명백한 과잉이다. 최완 아이엠픽쳐스 대표는 “영화적 고민이 없는 자본이 양적인 경쟁에만 매달렸다”며 “방만하고 무성의한 기획으로 시나리오를 깎는 작업을 소홀히 한 결과가 점유율 20%”이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괴물> 은 준비기간만 1년이 넘었다”며 “기획에 전력투구 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창무 서울시 극장협회장도 “관객 품평회를 배급단계가 아닌 기획단계에서 실시, 대중의 요구와 영화 마니아들의 참신함을 제작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제는 급격히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문제다. 이준동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은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괜찮은 시나리오에 A급 스타를 캐스팅해도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크린쿼터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앞날이 더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괴물>
제작비의 기형적 구조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영화에서는 평균 제작비 40억원 가운데 15억원 이상이 마케팅과 필름프린트 비용으로 쓰인다. 할리우드 직배사의 와이드 릴리스 전략에 맞서기보다는 배급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투자ㆍ제작사와 극장이 수익을 나눠 갖는 극장과의 부율조정, 관람료 인상도 논의가 필요하다.
스파이더맨 보다 무서운 '4장에 만원'
전문가들이 꼽는 한국영화 ‘공공의 적’ 1호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불법DVD다. 이준동 부회장은 “지난해 불법 DVD업자들이 벌어들인 수익이 영화계 전체 손실액의 3배 가까이 된다”며 “부가판권 시장만 회복되어도 ‘위기론’은 사라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한섭 서울예술대 교수(영화학)도 “DVD는 부수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윈도우(미디어산업에서의 소비단계)’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미디어산업에서는 디지털화의 속도보다 디지털화가 가져올 영향도 중요하다”며 “뒤늦게라도 정부가 정교하고 강력한 정책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로 눈을 더 적극적으로 돌릴 필요도 있다. 지난해 전국 관객은 1억 6,385만명(영화진흥위원회 추산)으로 4,800만 인구를 고려할 때 포화상태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우위선(吳宇森)감독이 만드는 7,000만 달러 짜리 <적벽대전> 에 부분 투자를 해 10.5%의 지분을 확보한 쇼박스의 모험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해외 마케팅전략도 바꿔야 한다. 지난해 영화 수출액은 2005년에 비해 70% 가까이 급락했다. 콘텐츠의 매력보다는 일부 연예인의 한류 인기에 편승한 안이한 제작과 무신경한 마케팅이 한국영화의 아시아 시장까지 몰락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적벽대전>
배우한 기자 bw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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