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다국적 산업 스파이의 주요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해가 갈수록 해외로 빼돌려지기 직전에 적발되는 첨단 기술의 건수가 급증하고, 피해 업종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이 10일 발표한 현대ㆍ기아자동차 기술 유출 시도를 포함, 2003년 이후 현재까지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적발한 유출 사건은 90여건으로 조사됐다. 사전에 적발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가 입게 될 피해규모는 업계 추산으로 약 114조원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정원이 전담 조직까지 만들 정도로 감시 수위를 높이고 있으나, 매년 적발 건수와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출범한 2003년에는 6건에 불과했던 적발 건수가 2004년 26건, 2005년 29건으로 늘어났다. 2006년에도 30여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예방액도 2003년 13조9,000억원이었지만,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32조9,000억원과 35조5,000억원으로 천문학적 규모로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에 적발하지 못한 실세 피해액은 연간 수 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술 유출의 패턴도 크게 변하고 있다. 2~3년전만 해도 기술력이 한 수 아래인 중국 기업을 중심으로 휴대폰, 반도체 등 특정 정보기술(IT) 분야에서만 유출 시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출을 시도한 기업의 국적도 다양해지고, 대상 분야도 자동차ㆍ조선 분야 등 주요전략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술 유출이 핵심 목적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한국에 연구진을 파견해 현대차의 생산성및 기술수준과 관련된 정보를 획득하려다가 국정원 제지로 무산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 유출시도가 급증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수준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력이 커진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국내 기업들의 관리 체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원가절감과 구조조정 차원에서 해고된 전직 직원에 대한 관리 소홀이 핵심 기술유출의 최대 통로가 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기술유출자 중 86%가 해당 기업의 전ㆍ현직 직원이었으며, 유출자 대부분인 71%가 금전적 유혹과 개인 영리를 위해 기술을 유출했다.
실제로 현대차의 경우 최근 2건의 기술유출 시도가 적발됐는데도, 현직 직원이 가담한 유출 사건이 재발했다는 것은 국내 기업이 그만큼 정보보안에 소홀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전문가는 “해킹관리 서버나 감시카메라 설치에만 신경쓸 뿐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적다”며 “한국 기업의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산업보안은 걸음마 단계”라고 지적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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