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 돈이 많아지면 주가는 오르고 금리는 낮아지며, 반대로 돈이 줄어들면 주가는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이는 현실에서 늘 벌어지는 경제원칙이지만 어쩐지 우리의 관심은 주가나 채권가격 상승(금리인하) 같은 낙관적 국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신흥시장국들에 자금이 넘치도록 흘러 들면서 이들 지역의 부동산가격이나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아마 그 시작은 200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인한 경기 침체를 탈피하기 위해 저금리 기조로 돌아서면서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졌다.
처음에는 선진국 핵심 기업의 주가나 대도시 부동산 값이 오르다가, 점차 일반 기업이나 주변 지역으로 번져 나갔다. 멈추지 않는 유동성 증가는 세계화 진전을 바탕으로 신흥시장국으로 파급되면서 급기야 동유럽이나 동남아의 이름도 익숙치 않은 국가의 주가까지 급등하게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묘한 상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구미 선진국에서 동남아 개도국에 이르기까지 자산 버블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알게 모르게 긴축 기조로 돌아서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유동성의 증가 속도는 둔화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경우 2004년 중반부터 유동성을 조금씩, 그러나 계속 죄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이나 일본과 같은 주요 국가들도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그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유동성 증가가 둔화한다는 사실에는 반론이 없어 보인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세계 유동성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유동성지수가 2005년경부터 낮아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는데, 이 지수와 신흥시장국으로의 유동성 유출ㆍ입과는 대체로 2년 정도의 시차가 있다고 하니 예사롭지 않다.
또 과거 경험상으로도 선진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과 신흥시장국의 금융위기와는 적지 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IMF가 지적한 동유럽 신흥시장국의 취약성은 쉽게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2003년 이래 전체 신흥시장국으로의 자금유입액 중 절반 가량이 이들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어떤 계기가 발생하면 역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금 세계 금융시장은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디서 '툭'하고 문제가 터지면 상당한 자산가격 폭락이 벌어질 수 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필자가 너무 과민해서일까.
한국은행 조사국 안희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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