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벌린 / 이제이북스실러에게 환희는 '자유'… 현란한 교양의 향연
독일의 극작가ㆍ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1805년 5월 9일 46세로 사망했다. 20세기 영국의 지성 이사야 벌린은 <낭만주의의 뿌리>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러는 쉬지 않고 정신적인 자유에 관해서 말하는데, 그것은 ‘성스러운 자유’ ‘견고한 자유의 요새’ 같은 표현으로 나타난다. 낭만주의의>
실러의 유산은 이후 낭만주의자들의 정신에 깊숙이 각인되었으며… 그들은 완전한 해방에 한걸음 더 다가선다.” 실러의 희곡 <군도(群盜)> 는 인간 개성ㆍ감정의 해방을 외친 ‘질풍노도’ 문학운동의 대표작이다. 군도(群盜)>
희곡 <빌헬름 텔> 에도 그의 사회비판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잘 드러나 있다. 베토벤이 교향곡 <합창> 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한 실러의 시 <환희에 붙여> 는 그대로 인류의 환희를 표현하는 송가가 됐다. 환희에> 합창> 빌헬름>
실러와 괴테(1749~1832)의 우정은 유명하다. 1794년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괴테가 협력함으로써 시작된 두 사람의 영혼의 교류는 실러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괴테는 이 시기에 실러의 문학적ㆍ사상적 이해에 고무돼 <파우스트> 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를 완성했다. 빌헬름> 파우스트>
대중강연을 정리한 책이라 생생한 말맛이 살아있는 <낭만주의의 뿌리> 는 실러 등 예술가ㆍ사상가를 통해 낭만주의를 보는, 이사야 벌린 특유의 해박하고 현란한 지적 향연이다. 낭만주의의>
그는 낭만주의를 “수천년 동안 지속됐던 서구적 삶과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꾼 가장 광범위한 근대 운동”으로 “타인의 이상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의 이상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관용과 이해의 사상”이라고 정의한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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