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양대 대선주자들의 경선 룰 싸움에 연일 날을 지새고 있다. 4ㆍ25 재보선 패배 직후 국민에게 약속했던 반성과 당 쇄신은 오간 데 없다. 불과 13일전 선거에서 참패한 당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당 개혁 논의는 어느새 경선 룰 논란으로 변질, 전락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재보선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한나라당의 쇄신과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지 고민할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들고 당을 더욱더 개혁하고 변화시켜 국민의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달라”고 당에 주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인적, 제도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요 당직자 일괄 사표를 제출했지만, 후속 인사는 경선 룰 확정 뒤로 미뤄졌다. 그러니 당직자들의 일손이 제대로 잡힐 리 없다.
자연 국회대책이라는 것도 없다.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됐던 사학법과 국민연금법 등 주요 법안은 회의의제에서 빠진 지 오래다. 원내대표도 경선 룰 논란에 끼어들기에 바쁘다.
한나라당은 지난 주 당원협의회 위원장 재산공개, 당 소속 선출직의 비리로 재보선이 실시될 경우 해당 지역 공천포기, 지방의원들의 상임위 직무관련 영리활동 금지 등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발표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들 제도의 시행을 위해 당헌 당규 개정을 통한 조문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나 경선 룰 싸움의 벽에 막혀 현실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대부분 언론이 재보선 패배 원인으로 대선주자들의 과열 경쟁을 지목했지만, 자체 평가에선 이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진단이 틀리니 제대로 된 처방과 실천이 나올 리 없다. 여의도연구소는 7일 재보선 패배 원인을 분석한 자료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했지만, “패인분석이 너무 안이하고 틀에 박혔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연구소 관계자는 “보고서는 당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정책에 담아내지 못한 점, 낮은 투표율, 후보 자체 문제 등을 패인으로 거론했다”고 전했다. 대선주자들의 눈치를 살핀 탓인지, 상식에 가까운 대선주자 책임론은 없다.
그러나 두 대선주자측은 “우리는 당의 변화와 쇄신을 바라는 데 상대방이 자꾸 경선 룰 문제를 들고나와 상황이 뒤틀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애초 한나라당에 당 쇄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당직자는 “당 쇄신은 뒤로 한 채 대권 싸움에만 골몰하는 본말이 전도된 한나라당을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 지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될 경우 ‘지지 피로’현상이 심화해 당과 대선주자 지지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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