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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의 책, 산 그리고 자연이야기] <6>"양양댐 건설 막지는 못했어도 규모는 축소시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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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의 책, 산 그리고 자연이야기] <6>"양양댐 건설 막지는 못했어도 규모는 축소시켜 위안"

입력
2007.05.0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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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보존회가 발족한 뒤 당면한 첫 과제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설악산과 관련한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계령 남쪽의 점봉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점봉산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산이어서 한계령 남쪽 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 아! 그래요”했다.

44번 국도가 한계령을 넘어 심한 굴곡과 절경을 끼고 내려가면 오색약수가 있는 점봉산의 북사면이다. 점봉산은 북사면은 돌산이지만 나머지는 완만하고 물이 풍부하며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다.

1995년 7월 6일 국내 최고의 원시림을 자랑하는 점봉산과, 연어의 모천인 양양 남대천 두 곳에 양수발전소 상ㆍ하부댐을 건설하겠다는 한국전력의 계획을 정부가 승인했다.

상부댐 지역인 점봉산의 벌말골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에서 5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아 댐이 건설되면 자칫 세계 유일의 한계령풀 서식지가 파괴될 수 있었다.

댐이 들어설 지역은 한계령풀 뿐 아니라 금강초롱 같은 한국특산식물과 연령초, 앉은부채, 관중, 금강애기나리 등 특산식물 및 법정보호식물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전력 보고서는 댐이 들어설 지역에 한국특산식물, 희귀식물이 없다고 돼 있었다.

우리는 정부의 사업승인이 나기 전부터 이미 점봉산에 댐이 들어서리라는 소문을 들었던 터라 95년 초부터 그 곳을 들락거리며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우이령보존회에는 곤충 문영태, 연어 황영태, 식생 이은복 이병천 현진오 오병훈, 동물 우한정 등 전문가가 있었다. 이들 전문가와 우리 회원들이 세 차례에 걸쳐 현장 조사를 했다.

그러다가 사업 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양수댐 건설 반대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점봉산 양양 양수발전댐 건설반대 전국 모임’을 갖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오색초등학교 담에 현수막을 걸고 서명을 받으며 함께 100여 동의 텐트를 치는 야영을 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드디어 8월 13일 낮 12시 하부댐 건설 예정지인 남대천 상류 영덕리에서 모임을 열었다. 우이령보존회를 비롯해 남대천보존회, 백두대간보전회 등 20여 단체와 주민 등 300여명이 참가했다.

시인 안도현의 동화 <연어> 가 막 뜨고 있을 때여서 연어가 돌아오는 남대천에 대한 관심도 커지던 시기였다. 12월부터는 서울 도봉산 입구에서 매주 2,000명씩 댐 건설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았다. 이듬해 3월에는 진동리에서 설피밭 눈 밟기 행사를, 4월에는 서울 을지로 입구의 한국전력 홍보관 앞에서 양수발전소 건설 규탄대회를 가졌다. 5월에는 점봉산 산풀꽃보기 행사를 열고 점봉산 생태계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업 승인의 취소와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법정 소송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임통일, 박성원 두 변호사는 현재 우이령보존회 임원으로 법적인 업무를 도와준다.

반대 운동 과정에서 만난 주민들도 큰 힘을 주었다. 특히 고석범, 이진구씨 등 이장들은 남다른 추진력을 보여주었으며 박태수씨는 한때 창 하나로 산돼지를 잡았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로 우리들을 격려했다.

별명이 홍털보라는 우이령보존회 회원의 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장사인데다 성격도 불 같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한번은 반대운동을 하던 도중 현장에서 몸 싸움이 벌어졌는데 분을 못이긴 홍털보가 바위를 들어 주차해있던 차량의 앞 유리창을 내리쳤다. 폭력을 절대금기로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산속 외길이라서 꼼짝없이 독 안의 쥐가 될 판이었는데 홍털보는 유유히 산을 넘어 사라졌다.

이렇게 댐 건설에 반대했지만 결국 법원에서 패소했고 댐은 2006년 8월 완공됐다. 착잡한 마음이 들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때문에 댐 규모가 줄어들고 백두대간의 능선이 지켜졌다는 점에서 위안이 됐다. 필요 이상으로 비대한 사업의 규모를 줄이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수문출판사 대표ㆍ우이령보존회장ㆍ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동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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