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보다는 성장을’.
미국식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프랑스는 과감한 경제개혁의 길에 들어섰다.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가치’를 중시하는 드 골 주의에서 벗어나 친미적인 노선을 견지할 것으로 보여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마찰음을 냈던 양국과의 관계는 해빙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 경제정책 - '주 35시간 근로' 개편 등 노동계와 마찰 예고
사르코지 당선자는 ‘함께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슬로건 아래 전반적인 개혁을 통해 침체에 빠진 프랑스를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와 감세정책,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 및 근로시간 연장,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적극 도입 등이 대표적인 경제정책 공약이다.
이에 따라 사르코지 체제에서는 과거 사회당 정권이 도입했던 주 35시간 근로제가 탄력적으로 개편돼 시간외 근무가 장려되고 ‘더 일한 만큼 더 벌 수 있는’ 시스템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로시간 연장과 함께 국영기업 민영화와 공공 서비스 비용 축소 등으로 공무원 감축이 추진되면서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살 것으로 전망된다.
사르코지는 또 경제성장의 추이를 봐가면서 최저 임금을 점진적으로 늘리고, ‘2년 내 모든 노숙자에게 거처를 공급하겠다’ 는 공약도 내세웠다.
그는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으면서 양질의 노동력은 적극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민자 통제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이를 담당할 국가정체성 및 이민 담당 각료직을 신설할 예정이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경제 애국주의’정책에도 주력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에 호의적이라고 해도 그가 초(超) 자유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르코지의 등장은 프랑스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겠지만 ‘톨레랑스(관용)’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자유주의 전통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는 국영기업 민영화, 공공부문 고용 축소, 공무원 감축 등의 공약 등에 따른 노동계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對美관계 - '견제?협력' 이라크전 둘러싼 경색관계 개선
자크 시라크 정권에서 내무장관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반(反) 시라크적이라는 평을 들어 와 외교정책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우파이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적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 드 골 주의자인 반면 사르코지는 ‘미국에 밉 보여 득 될 것이 없다’는 친미적 입장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대미정책은 ‘견제정책’에서 ‘협력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뉴스위크는 “사르코지가 마르퀴스 더 라파예트 이후 미국인들(Yanks)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라파예트(1757~1834)는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1777년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군에 참가해 조지 워싱턴 장군과 함께 영국군에 맞섰다.
다만 사르코지가 ‘국익 우선주의자’이고 실리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국에 무조건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환경 문제에서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 분명한 거리를 두며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 대책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란, 중동평화 문제는 물론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군시한 요구를 지지하는 등 시라크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일정 부문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유럽통합 - 터키 가입 강력 반대… EU확대 제동 걸릴듯
사르코지 당선자는 유럽통합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2004년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국민투표에서 통합 헌법을 거부한 이래 통합 절차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유럽통합론자인 시라크 대통령이 헌법을 되살리려고 애썼지만 프랑스 유권자들은 이를 거부, 시라크의 때이른 레임덕을 불러왔다.
사르코지는 1990년대 말 유럽의회 의원직을 역임한 적이 있지만 오히려 이 기간 유럽통합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됐다.
그는 터키 가입 불가 등 EU 확대 반대, 유럽헌법 조약 대신에 범위를 축소하되 국민투표가 아닌 의회 비준만으로 발효될 수 있는 ‘미니 조약’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미니 조약에는 유럽 목소리를 강화하기 위해 EU 상임의장과 상임 외무장관직을 신설하고, 이민문제 등에서 전체 회원국의 동의없이 일부 회원국끼리 공동정책을 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르코지는 터키의 EU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터키_남유럽_북아프리카 모로코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중해 국가연합체를 통한 유대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이 올해 안에 유럽헌법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지만 통합 유보론자인 사르코지가 당선됨으로써 유럽 통합은 일단 제동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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