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30여년간 지속해온 수도권 규제정책의 정당성이 요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방에 대한 직접지원이 아니라 수도권 규제를 통해 지방 발전을 꾀한다는 발상 자체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급변하는 무역환경에서 수도권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규제를 풀면 수도권 일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지금도 수도권을 고집하는데 규제를 풀 경우 지방경제는 자생력을 상실하고 결국 국가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수도권의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인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눴다.
_먼저 수도권 규제가 효과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상대 경기개발연구원 수도권정책센터장=수도권 규제는 과밀이나 환경악화 등을 막기위한 도시 정책이다. 그런데 도시정책으로 지방균형발전까지 달성하려니 모순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돈을 안들이고 지방균형발전을 이루려고 규제를 강행하려는 의도가 짙다. 지방 발전을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 등 직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는 외면하고, 수도권 규제를 해야 지방균형발전이 이뤄질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나중규 대구경북연구원 주력산업연구팀장=2000~2005년 지방 이전 기업을 보면 충남 등에만 밀집되고 있다. 영남과 호남은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인프라 부족 때문이다.
수도권 기업을 지방으로 유인하려면 실제 기업이 정착할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현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것이 가시적인 효과는 낼 때까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늦춰야 한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수도권 규제는 아주 부분적인 효과에 그쳤다고 본다. 문제는 상황이 더 안 좋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개방체제로 봤을 때 ‘수도권 규제=기업 지방이전’ 등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말고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 강점 분야가 있듯이 조선 자동차 기계 철강 등의 입지 조건이 따로 있다. 그 산업이 필요로 하는 입지를 제때에 적절히 공급해 줄 수 있도록 정책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규제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_참여정부의 지방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참여 정부가 하고 있는 사업들이 효율성, 정책면에서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하지만 효율성도 떨어지고 지역격차 해소도 안 되고 있다.
지방 발전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데 혁신도시 등은 너무 ‘나눠주기식’이다. 그러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 일본의 테크노폴리스도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대략 4개 지역 경제권 단위가 선택과 집중에서 효율적이라고 본다.
박=정부정책의 방향은 동의하나 방법은 잘못됐다. 11개 혁신도시별로 이전하는 직원이 평균 2,000명 정도인데 그 정도 규모를 가지고 지방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방발전을 위해서는 분산보다는 철저하게 효율성으로 가야 한다. 그 지역이 잘 할 수 있는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나=“다른 정부에 비해 비교적 균형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수도권 규제도 완화해 구미 같은 경우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다.
_지방에서는 규제를 풀면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은 아닌지.
나=지방에서 수도권 규제 강화 목소리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도권쪽의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수도권 한곳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바로 이어지고, 수도권이 나머지 지방을 모두 먹여 살릴 지 의문이다.
소득 3만불 시대는 수도권만 갖고 이뤄질 수 없다. 광주의 문화산업, 부산의 영화, 대구 뮤지컬 공연 사업 등에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지방에서는 규제를 풀면 지방에 있던 기업들이 다 수도권으로 역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수도권도 그것은 바라지 않는다. 문제는 수도권 규제 때문에 신규투자, 외국투자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도권과 지방에 모두 손해다.
박=사실 규제라는 큰 간판 때문에 지방발전의 대안을 탐구하는 데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 이제는 권역별로 지역 개발기구를 구성하는 등 대안 찾기 노력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현재의 균형정책은 나눠주기만 했을 뿐 성공사례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간 단위를 키워서 중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광역화, 초광역화가 굉장히 중요한 향후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여기 저기 국제공항을 만드는 것 같은 것이다.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을 오히려 깎아 먹고 있다. 광역 경제권 단위가 돼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경쟁력 있는 광역경제권을 만들어야 국가가 발전하고 지방 발전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나=규제가 완화됐다고 지방기업이 짧은 시간에 수도권으로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 업체들이 장기적으로 수도권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가겠다는 데 정부가 막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규제간판을 내리더라도 인프라가 구축될 때까지 미뤄달라는 것이다.
_학계에서도 수도권 규제정책이 지역균형발전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 구체적인 연구자료가 드문 것 같다.
나=과거 구미 포항 창원 등 생산거점을 활발히 개발할 때에 비한다면 사실상 도움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본다.
이=충청의 당진 천안 음성, 강원 원주에 공장이 입주하는 것은 규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박=부분적인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규제로 인한 효과인지, 투자에 의한 효과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통한 균형발전 효과를 명확하게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만 수도권 인접지역으로의 기업 이전은 규제 효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_수도권 규제완화가 지방과 수도권의 이해다툼으로만 비쳐진다. 정치권에서 이를 이용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정치인들이 규제논리를 이용하고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개선을 가로 막는 부분이 있다.
나=규제 완화에 대해서 지역에서도 관심을 가진 것이 몇 년 안 된다. 정치권의 논리라기보다는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삶에서 느껴지기 때문에 절실한 것이다.
박=일부 조장세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규제를 완화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윤리적이라는 생각도 고착화 됐다.
30여년 해서 효과가 없으면 폐기해야 하지만 지방에서는 규제가 있어야 뭔가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여전하다.
_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대한 요구를 정리한다면.
박=“수도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제는 질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본다. 환경, 토지, 산업입지, 기반시설 등 각 분야에서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 교육, 문화적 기반 등 종합적인 글로벌 입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느냐를 살펴야 한다. ”
이=규제를 무조건 철폐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것을 규제하고 어떤 것을 유지할 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규제를 선별하고 정교화 해야 한다. 규제는 선진화 차원에서 명확한 방향을 갖고 살펴야 한다.
나=우리나라의 80년대 고도 성장의 바탕에는 지방의 생산기능 등 분업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수도권에 인프라가 집중되는 바람에 역효과가 나고 있다. 정부가 미리 지방에 인프라를 구축했더라면 수도권 규제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3,4개 경제단위의 육성이 필요하다. 지방에는 다양한 사업의 체계적 추진과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최근 전국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지역발전협의체가 구성됐다. 수도권 규제완화의 허와 실에 대한 좀더 치밀한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사회=이범구기자 goguma@hk.co.kr 정리=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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