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혼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중, 삼중고를 뜻한다. 경제적 궁핍과 패배감, 주변의 야릇한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특히 결혼생활 내내 주부로만 지내왔다면 바삐 돌아가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놓치기 쉬워 홀로 서야 하는 부담은 배가 된다.
조수진(36)씨가 그랬다. 그는 2년의 별거 뒤에 2004년 말 이혼했다. 코흘리개 두 아들(8, 4세)과 험한 세상을 살아가자니 막막했다. 결혼(1997년) 후엔 가사만 했던 터라 사회경험도 미천했다. 수중엔 6,000만원뿐이었다.
미국 이민을 고민했다. 간호사자격증만 있으면 자립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공부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맘에 걸렸다. ‘혹시 아이들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주류 이민사회에 들지 못하면 겉돌게 될 텐데….’
결국 조씨가 택한 길은 창업이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엄마만이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작한 건 아니다.
그는 2년 동안 착실히 준비한 끝에 지난해 5월 ‘행복추풍령 감자탕&묵은지 전문점’(www.gamjatang.co.kr)으로 창업, 이제 매달 4,5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그가 말하는 여성창업 노하우를 들어봤다.
창업도 공부다
처음엔 어머니가 운영하는 게임ㆍ만화 복합방 일을 거들었다. 육아는 어머니가 도와줬다. 그는 매일 수입보다 손님들의 동선, 경쟁 업소의 시설 및 서비스 수준을 눈 여겨 봤다. 시간 나는 대로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창업 동향을 살폈다.
그는 “5년 넘게 주부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을 다시 배운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지난해 봄 서울 여의도에서 스파게티전문점(50평 규모)을 힘들게 운영하던 친척이 가게를 인수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조씨1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발로 뛰며 입지조사부터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파게티론 경쟁력이 없었다. 여의도동 주상복합건물에 있는 점포는 남성 샐러리맨이 많은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창업 정보를 꼼꼼히 챙기다 보니 오피스 상권은 점심과 저녁식사 되는 한식이 어울린다”는 판단을 내렸다.
유독 감자탕집이 주변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씨는 업종을 감자탕 전문점으로 정하고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중 어머니가 가끔 감자탕을 사오던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회사원 이미지에 맞는 깔끔한 인테리어도 맘에 들고 저 역시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고 해서 감자탕에 묵은지를 접목한 행복추풍령으로 결론을 내렸죠.”
일단 결정하자 망설이지 않았다. 음식점은 대부분 망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시작부터 대규모로 밀어 부쳤다.
그는 전재산(6,000만원)과 대출(4,000만원), 소상공인 창업 지원금(3,000만원), 친척들에게 빌린 돈 등 총 2억3,000만원을 투자해 가게를 열었다. 맛깔스러운 손맛을 지닌 전라도 출신 어머니가 주방을 맡고 자신은 경영관리를 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재료비 1,800만원, 임대료 660만원, 인건비 680만원(5명), 관리비 160만원을 빼고도 매달 1,200만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
성공엔 끝이 없다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메뉴를 정하고 입지를 보는 게 아니라 입지를 정하고 메뉴를 택해야 해요. 소상권일 땐 다양한 메뉴를 갖춰야 하구요. 프랜차이즈를 고를 때도 해당 전문가가 있는지, 재정적으로 탄탄한 곳인지도 꼭 염두에 둬야 합니다.”
입 소문이 나면서 단골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조씨는 만족하지 않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서비스에 대해 토론 및 아이디어 회의를 벌이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친절교육에 참가하고 관련 책을 찾아 읽는가 하면, 인사와 손님 안내하는 방식 및 말투, 메뉴에 대한 설명을 표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단체손님이 와도 절대 메뉴 통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비록 밥 장사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프로정신으로 임하지 않으면 학력이 높은 직장인들은 금새 가게를 떠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제 그는 이혼의 상처를 딛고 보다 큰 꿈을 꾸고 있다. “소비욕구가 활발한 20, 30대 독신층을 겨냥한 새로운 음식점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계속 공부중이다.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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