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왔다. 걷고 먹고 자는 일을 반복하는 11박 12일의 여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낙오하지 않고 주어진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이동수단은 오로지 자신의 두 다리일 뿐 어떠한 문명의 혜택도 허락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가 뜨면 먹고 걷고, 해가 지면 잤다. 종일 걸어봐야 고작 10㎞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 평균 8시간 정도를 걸었다. 100여km를 걸은 셈이다.
마침 히말라야도 봄이었다. 제비꽃이 지천으로 깔리고 네팔 국화인 랄리그라스(부르스)가 산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히말라야는 거대한 산이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하루 이틀 오르면 산의 능선을 따라 여유로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상상했으나, 이는 내 순진한 기대였을 뿐이다. 몇 시간씩 오르내림이 수없이 거듭됐다. 지리산 천왕봉을 몇 번씩 오르내린 셈이다.
하지만 히말라야도 망가지고 있었다. 랄리그라스는 땔감으로 베어지고 가파른 산은 계단 논밭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떤 곳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밭이 족히 1㎞가 넘었다.
무리한 개간은 곳곳에 엄청난 산사태를 부르고 또 예고하는 것이다. 네팔 국민들에게 히말라야는 그저 삶의 터전일 뿐, 더 이상 신성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해발 3000m에 이를 때까지 가축 배설물에 시달려야 했다. 가는 곳마다 어린이들로 넘쳐 났고, 이들은 천진한 눈망울을 굴리며 “Are you sweet!” 를 되풀이 했다. “사탕 있느냐”고.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를 매료시킨 것은 히말라야 흰나비였다.
작디작은 나비가 계곡을 유영하듯 바람을 타고 흐른다. 깎아지른 검푸른 깊은 계곡에, 모든 것을 삼키고도 남을 짙은 음영의 계곡에 흰점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때를 만난 암ㆍ수가 희롱을 하며 하늘하늘 상승곡선을 긋다가 어느 순간 기류에 몸을 맡기고 바람의 끝까지 아스라이 흘러간다. 히말라야 흰나비는 영원한 자유의 표상이었다.
돌아오는 중국 상하이(上海) 공항에서야 비로소 나는 안전하게 하산을 했다는 소식을 집에 전했다. “지금 황사가 난리에요. 인천공항의 비행기 착륙이 어렵대요.” 나는 뒤통수 맞은 것처럼 순간 멍멍해지고 말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보았던 만년설과 밤마다 쏟아지던 무수한 별들이 부서져 내리면서 머리 속이 허옇게 텅 비어 버렸다. 돌아가면 따뜻한 욕조에 실컷 몸을 담그고 포근한 침대에서 단잠을 즐길 기대에 부풀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말로는 자연이 어떻고 원시가 어떠며 오래된 미래 운운했지만, 사실은 길들여지고 양육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느리고 간편하며 단순한 히말라야의 삶이 효율적이지 못하고 불편하며 원시적인 삶이라고 몸이 거부하는 한, 예고된 지구의 대재앙은 현실화하고도 남을 것이다.
임옥상 문화우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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