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하면 으레 ‘화려’, ‘사치’가 떠오른다. 그러나 국내 보석 디자이너의 삶은 다르다. 이향숙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주얼리디자인과 교수가 전하는 씁쓸한 일화 한 토막.
“평생 보석 세공을 하던 디자이너가 바나나 장사를 시작했대요. 하루에 30만원을 버니 한 달이면 900만원이란 계산을 뽑고 나선 보석 일을 그만뒀어요. 밤새 피 말리는 작업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못 벌어 지긋지긋하대요. 실력이 정말 좋은 친구였는데….”
‘보석 디자이너도 명색이 장인(匠人)인데, 아주 특수한 사례겠지’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이 교수는 “국내 보석산업이 빈사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묻는다.“거리에 넘쳐 나던 금은방은 모두 어디로 갔나요? 액세서리로 분류되는 저가 보석은 판을 치는데 정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보석 브랜드가 있나요?”
명품 브랜드가 없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돈으로 치장한다’는 값비싼 보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그 틈을 여지없이 뚫고 들어온 까르띠에 샤넬 불가리 티파니 등 해외 명품 보석의 파상공세, 그리고 정부의 무관심. 이 교수는 “심리전과 물량전 모두 지고 있는데 보석산업 발전을 진두지휘할 정부마저 손을 떼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보석감정사 제1호, 보석 디자이너 1세대로 20년간 보석 외길을 걸어온 이 교수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5,000년의 보석 역사, 매년 2,500여명의 보석 디자이너를 배출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을 명품 보석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때‘르네상스의 꽃’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올랐다.“다빈치 혼자서 수많은 걸작을 만든 게 아니잖아요. 수많은 장인들이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공방을 열었죠. 단순하지만 그 의미 있는 출발이 다빈치란 브랜드를 완성한 거죠.”
내친 김에 ‘한국 보석산업의 르네상스’라는 기치도 내걸었다. 그는 사재를 털어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패션거리에 국내 최초로 주얼리 갤러리 ‘오뜨클라세’(Haute Classeㆍ최상급)를 열었다.“세계 최고의 명품 보석을 만들고자 하면 누구나 찾아와 전시회를 열고 경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꿈은 결코 황당한 게 아니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상을 타는 국내 디자이너가 수없이 많을 만큼 기술은 정상급”이라며 “10년을 내다보고 프론티어 100인전을 통해 명장(名匠)을 배출해 독자적인 브랜드로 영국 프랑스 등에 매장을 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은 남았다. “한 사람의 힘 만으론 부족합니다. 보석산업이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보석’이란 점을 정부가 알아줬으면 해요.” 특별소비세 폐지, 보석 디자이너의 활동공간 제공 등 정부가 할 일은 많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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