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 강목욕탕의 '착하게 살자' 속물근성에 대한 조롱
아들의 복수를 해 주다 망신 당하고 있는 재벌 회장 이야기가 화제다. 성석제(47)의 소설집이 떠오른다. ‘성석제 표’라 할 촌철살인의 짧은소설 모음인 이 책에 들어있는 <고독> 이라는 이야기다. 고독>
“남자 목욕탕은요, 돈 받고 사람 주눅들게 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라고, 처음부터 슬슬 웃기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목욕탕에는 ‘알통’도 있고 ‘미남’도 있고 뛰고 달리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조금만 뜨거워도 발발 떨고 조금만 추워도 벌벌 떠는 저 같은 사람’은 기가 죽어 구석자리만 찾는다.
그런데 한 사내가 온탕 앞에서 고독하게 몸을 씻고 있다. 나는 알통과 미남과 아이들 등쌀에 떠밀려 점점 사내가 있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늠름하게 넓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몸을 씻는 사내가 부럽기만 하다.
그러다 문득 사내의 오른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본다. ‘참자’. 나는 궁금증을 못 이겨 사내의 왼팔뚝도 훔쳐 본다. “비로소 사람들이 사내 근처에 얼씬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서툰 글씨로 다섯 글자가 문신되어 있었으니, ‘착하게 살자’.”
쿡쿡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이 책에 실린 50여 편의 짧은소설은 이렇게 우리의 속물근성을 조롱한다. 작가는 책 말미에 “내가 먼저 떨어야 남도 나를 무서워한다, 이것이 병 잘 깨는 깡패 이야기라면, 작가는 저부터 재미있게 써야 남들도 재미있게 본다”고 ‘꾼의 미학(美學)’을 설파하고 있다. 그 미학은 다 어디로 갔나, 재벌 회장 사건을 보면서 참 재미나는 인생이라는 실없는 생각이 든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