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역사 몸의 문화/ 강신익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ㆍ352쪽ㆍ2만원
잊을 만하면 들리는 뉴스 중 하나가 양ㆍ한방 갈등이다. 몇 년 전 한의사회가 한약 감기약을 대대적으로 광고하자 내과의사 단체가 한약 복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캠페인으로 맞섰고, 한 국립대학이 한의학전문대학원을 세우려 하자 의사협회가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간의 몸을 치료한다는 공동 목표를 지닌 양측이 왜 서로에 대한 비방으로 날을 지새울까. 단순한 밥그릇 싸움일까. 양방이든 한방이든 낫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라면 모르겠지만, 두 의학체계 갈등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이라면 유용한 책이 나왔다.
인제대 의대에서 의철학을 강의하는 강신익 교수의 <몸의 역사 몸의 문화> 는 동아시아와 유럽을 기반으로 한 두 의학이 어떤 지적전통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형성됐는지, 그 차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9개의 장으로 나누어 들여다본다. 몸의>
책에 따르면 공히 무(巫)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털어내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 두 의학이 대척하는 지점은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발달한 해부학에서 볼 수 있듯 서양의학은 인간의 몸을 철저하게 객체화한다.
의(醫)에 해당하는 피직(physic)이라는 단어가 ‘자연’을 뜻하고 의사(physician)는 곧 ‘자연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서양의학은 인간의 몸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기계적으로 인간의 몸을 해석하는데 주력한다.
저자는 이런 서양의학의 시선을 ‘앎의 시선’으로 정의한다. 객체화해서 ‘알기 어려운’ 마음의 영역은 따라서 서양의학의 범주 밖이다. 반면 동아시아 의학에서 몸은 실제적 존재와 추상적 개념이 혼합된 대상이다.
한의사들은 그래서 신체의 구성요소를 정(精) 기(氣) 신(神) 등으로 나누고, 사람의 몸에 나타나는 색조와 질감의 차이를 통해 그 사람의 내적 상태를 읽으려 한다. 의학과 철학이 분리된 서양의학과 달리 동아시아 의학에서 철학이 분리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딱딱한 이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항 이후 한국인의 몸의 맥락을 고찰한 5장 <한국인, 몸의 역사> 는 합리적인 양방을 택할 것이냐 인간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한방을 택할 것이냐를 놓고 여전히 갈등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한국인,>
지은이는 동과 서의 의학적 관점이 맞부딪히던 당시의 혼란상을 묘파하는데, 특히 1895년의 단발령은 당대인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은 전통의학의 관점에 익숙해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위생관념을 내세워 상투를 자르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들의 도덕적인 정체성을 허물어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재 우리 의학계는 과학적 세계관을 유일한 치료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과학주의자와 전통적 한의학의 세계관을 고집하는 전통주의자, 이를 조화시키려는 절충주의자들이 서로서로를 배제하는 상황이다.
의학과 철학이 분리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온 서양과 달리 우리는 그런 분리 자체가 불가능한 문화를 살아왔고 여기에 서양의학이 이식돼 상황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는 이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다. 그는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독자적 의학체계를 따로 연구할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흐름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긴요하다”며 “지금의 혼란이 오히려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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