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응원하고 힘껏 달려 기분이 상쾌한데 상까지 받으니 너무 좋아요.”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4일 운동회가 열린 서울 용산구 이태원1동 보광초등학교는 응원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해맑은 얼굴로 한국 아이들과 어울려 운동회를 즐겼다. 국적은 달라도 동심(童心)은 모두 한 마음이었다.
4학년 1반 부반장인 세라 준불(10)양은 “조별 달리기에서 3등을 해 연필 5자루를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세라는 부모 중 한명 이상이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다.
그는 “학기초 여학생을 대표하는 부반장에 뽑혀 운동회 준비에 신경을 많은 쓴 올해는 어린이 날이 더욱 뜻 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세라는 만 두 살 때인 1999년 초 이슬람교 선교사인 아버지 하룩 준불(45)씨를 따라 가족과 함께 터키 이스탄불을 떠나 한국 땅을 밟았다. 어린이방과 유치원에서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며 우리 문화를 익혔다.
담임 최정희(59ㆍ여)씨는 “발표를 잘 하는 아이에게 하루에 별 스티커를 3개까지 주는데 세라는 매일 3개를 받아간다”고 말했다.
반 친구인 강민정양은 “세라는 어려운 친구들을 잘 챙겨주는 이해심 많은 아이”라고 칭찬했고, 박세결군은 “학습회의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당당한 모습이 멋지다”고 전했다.
세라는 터키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한다. 학급게시판의 ‘터키 소개란’을 재미 있는 내용으로 수시로 바꾸며 친구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세라가 매일 싸오는 터키 전통 빵은 인기 만점이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한 ‘한국 사람’은 아니다. 문화 장벽은 너무 두껍고 높다. 성적표는 세라의 힘겨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학과 국어 등 대부분 과목이 90점이 넘지만 사회는 70점대로 뚝 떨어진다.
세라는 “사회 교과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내용이 무슨 뜻인지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에 다니는 오빠 우사메 준불(21)씨나 고등학생인 언니 베틀 준불(17)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둘 다 너무 바쁘다.
어머니 누란 준불(42)씨는 아직도 한국말이 서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다문화 교육 시범학교인 보광초등학교에는 세라 같은 아이들 22명이 다닌다. 한 반에 한 명씩 배치됐는데 정상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아이는 서너 명에 불과할 정도다.
대부분 방과 후에 한국어 교육을 따로 받거나 담임 선생님들의 특별 지도를 하고 있다. 교사들이 부모와 상담을 하고 싶어도 의사소통이 힘들어 면담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전문가들은 “농촌 가정의 경우 3쌍 중 한쌍이 국제결혼일 정도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다민족ㆍ다문화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이제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아이들끼리 어울리며 이질감을 좁히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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