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전거를 훔친 날… 비밀의 공간에 대한 애틋한 추억
“엄마도 옛날에는 여자 아이였지 않은가. 자신의 가슴이 어떻게 커졌는지 언제 처음 브래지어를 했는지, 그렇게 중요한 일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이 동전만한 멍울의 아픔도 어른이 되면 잊어버리는 것일까?”(29, 30쪽)
2005년 일본 아동문학가협회상을 받은 이 책은 사춘기 아이들이 한 번씩 겪거나 고민할 법한 일들을 참 잘도 풀어놨다.
처음 브래지어를 산 아야코, 의붓오빠와 처음 대면한 마리나, 남의 자전거를 처음 훔친 쇼고, 동네 빈 집에 처음 아지트를 꾸민 료헤이 등 첫경험에 관련한 네 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몸과 마음이 크느라 겪는 성장통은 국적을 불문하고 똑같은가 보다. 성장의 문턱에 선 열두 살 아이들의 감성이 섬세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처음 가진 우리들의 집’ 편은 한 번쯤 가져봤을 비밀의 공간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좋아하는 프로레슬링 선수 포스터도 마음대로 붙이고, 집에서 오래된 이불을 가져와 방도 꾸미고, 만화책도 실컷 보고….
다섯 친구들이 꾸민 비밀의 집은 “게임은 한 시간만 해라, 손 씻어라” 잔소리 하는 어른이 없어서 더 신난다. 집에 거짓말을 하고 밤늦게 비밀의 집에 모두 모인 날, 료헤이는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상상도 해본다.
모든 것이 특별하다. 친구가 인생의 1순위였던 그때, 무리지어 몰려다니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했던 은밀한 즐거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브래지어 사달라고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던 아야코는 어떻게 됐을까.
드디어 엄마가 그것을 사준 날 아야코는 엄마를 원망했던 마음을 풀까 한다. 그런데 세상에, 엄마가 마트에서 장 본 닭고기와 어묵을 이제 막 산 브래지어 봉투 위에 담는다. 정말 화해 못할 엄마다. 아야코는 ‘나는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딸의 브래지어를 사는 날, 닭고기를 함께 사지는 않을 거야. 절대로 커서 엄마 같은 엄마는 안 될 거야’ 다짐하며 자전거를 쌩 타고 집에 간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꼭 맞다. 이미 어른이 돼버린 다음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첫경험들이 당시엔 얼마나 설레고 고민스러웠던가. 혹시 잊었다면 엄마 아빠도 슬쩍 읽어보자. 방문 쾅 닫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기 일쑤인 우리 아이, 요즘 부쩍 툴툴대는 심정이 이해될 듯도 싶다.
사토 마키코 글ㆍ장연주 그림ㆍ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발행ㆍ248쪽ㆍ8,500원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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