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여권의 대선주자로 선두를 달리던 고건 전 총리가 정치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이를 바라보면서 '손호철의 정치논평'에 <고건과 정운찬> 이라는 글을 썼다. 고건과>
고 전 총리의 낙마로 화장실에서 웃고 있을 사람이 대안으로 부상할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인데, 문제는 정 전 총장이 또 다른 고건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회창과 이수성, 조순인가 하는 글이었다.
● 권력의지 약했던 정 전 총장
구체적으로, 정 전 총장이 경기고, 서울대의 소위 KS 마크의 선배로 온실에서 승승장구해온 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권력의지를 갖고 있지 못해 낙마할 것인지, 아니면 같은 KS의 엘리트지만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소프트 랜딩했던 이수성 전 서울대총장이나 정 전 총장의 사부인 조순 전 총리 정도의 권력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가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정운찬 전 총장이 결국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말았다. 역시 또 다른 이회창, 이수성, 조순보다는 또 다른 고건에 불과했던 것이다. 정 전 총장에 기대를 갖고 있던 여권은 충격에 싸여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고 전 총리에 이은 정 전 총장의 낙마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능력있는 인물들조차도 한국정치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정 전 총장의 낙마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진입장벽은 문제지만 다른 자리도 아니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느 날 갑자기 정치에 경험이 전혀 없고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이 '백말 탄 왕자' 식으로 나타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여러 정치세력이 모이고 선거에 임하는 것은 낡은 인물정치로서 시급한 정당정치의 제도화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이 여러 가지 뛰어난 자질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지자들이 정 전 총장에 기대했던 궁극적인 자산이 그가 충청 출신이라는 지역기반이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아무리 현실이 한국정치가 지역주의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영남에 기초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시 디제이피라는 대항지역연합(호남과 충청)에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문제는 '고건, 정운찬 이후'이다. 여권의 구애는 이제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에게 향하고 있다. 물론 문 사장의 경우 환경운동 등 오랜 시민운동을 통해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정 전 총장과는 다른 면이 많다.
특히 문 사장과 함께 환경운동을 해온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이 한나라당과 같은 수구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적인 정치운동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 사장은 정 전 총장이 갖지 못한 강력한 정치적 우군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낙마 당시 정운찬 전 총장에게 던졌던 질문을 문 사장에게도 던져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 사장이 또 다른 고건과 정운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회창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동기야 어찌 됐든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당이 나타나는 것은 정당정치의 제도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정국
하긴 집권 후 정당정치의 제도화에 노력하는 대신 열린우리당을 만든 업보에 의해 당의 중심이었던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과 지지자들까지도 탈당할 예정인 등 여당 자체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대선을 앞두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의 시간이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 선진국처럼 예측 가능한 정치는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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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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