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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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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리뷰

입력
2007.05.0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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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무대는 경찰서 취조실이다. 눈가리개를 한 카투리안(최민식)과 두 형사가 있다. 용의자 카투리안은 자신의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엽기적인 방식으로 발생한 어린이 살해사건 때문에 끌려왔다. 살인사건을 취조하면서 투폴스키(최정우) 반장은 “왜 눈가리개를 계속 쓰고 있냐?”고 묻고, 카투리안은 “벗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고 대답한다. 이에 투폴스키가 내뱉는 한 마디. “또라이 아냐?” 순간 관객들의 실소가 이어진다.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으로 한국의 대표 연출가로 등극한 박근형과 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최민식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필로우맨> 은 화제를 모았다. 연극은 연쇄 살인사건을 둘러싼 취조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이물감에서 출발한다. 관객은 그러한 느낌을 제대로 음미하기 전 오로지 최민식의 연기와 연출가 박근형 특유의 재기 넘치는 구어체 대사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취조 과정에서 카투리안은 자신이 쓴 소설은 그냥 이야기일 뿐, 어떤 의도나 상징을 담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문과 욕설이다.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형사들과, 정신 지체아로 도덕 관념을 상실한 카투리안의 형 마이클(윤제문)이 벌이는 무의미한 말 장난과 부조리한 행동은 극의 중반까지 객석에서 끊임 없는 웃음이 새어 나오게 한다. 그러나 문득 ‘이 같이 불편한 이야기를 듣는데 왜 웃고 있는 거지?’라는 자문이 일 때 관객은 극에 몰입하게 된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극작가 마틴 맥도너의 현란한 블랙 코미디 <필로우맨> 을 곱씹어 볼 준비가 된 것이다.

카투리안의 소설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자살을 결심하는 어른들을 평화롭던 어린 시절로 안내해 비참한 현실을 경험하기 전에 자살하도록 돕는 베개 인간(필로우맨) 이야기와, 자신을 성폭력한 아버지에게 면도날을 넣은 사과를 먹이는 소녀의 이야기 등 주인공 카투리안이 전하는 일곱 가지 이야기는 하나 같이 학대 받는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이러한 그의 소설은 극 중에서 잔혹하지만 따뜻한 동화처럼 구현된다. 그 이야기가 극 중 현실과 겹쳐지면서 카투리안 형제의 숨겨졌던 과거사가 드러나는 장면은 발군이다.

최민식을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 재기 넘치는 대사와 어린이 연쇄 살해를 다룬 어두운 이야기를 밝은 동화처럼 꾸민 박근형의 연출 솜씨가 돋보였지만 이 연극의 최대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것은 마틴 맥도너의 희곡이다. 마틴 맥도너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카투리안은 “작가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고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보다 뭘 남기고 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위증과 가족 살해 죄로 결국 총살당하는 카투리안이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려 하고 새로운 동화를 상상하는 마지막 장면은, 마틴 맥도너가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짙은 연민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20일까지, LG아트센터. 화~금 오후 8시, 토ㆍ일 오후 3시 7시. (02)2005-0114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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