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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아프리카 에세이] 짐바브웨 (2) 마스빙고 결혼식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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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아프리카 에세이] 짐바브웨 (2) 마스빙고 결혼식 참가기

입력
2007.05.0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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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의 사촌형 결혼식이 열리는 마스빙고에 가기로 했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새벽 두시 반 야음을 타서 출발했다. 치자네 자동차는 폐차장에서 주워온 듯 엄청나게 낡은 르노다. 밝은 대낮 이런 차에 여섯 명이나 타고 가다 경찰에 걸리면 상당한 벌금 내지는 상납금을 물어야 한다.

치자가 애지중지하는 이 차는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숙연함 마저 느껴지는, 고물자동차의 극한값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시동 키, 백미러나 계기판과 같은 문화시설은 진작 사라지고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간결 그 자체다. 자동차라기보다는 바퀴 위에 엔진을 얹은 깡통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적합할 것 같았다.

몇 차례 시동이 꺼져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면서 힘겹게 아스팔트 도로로 들어섰다. 지친 당나귀처럼 숨을 씩씩거리며 가고 있는 우리들 뒤로 거대한 화물트럭이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며 ‘부아앙’ 요란스레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쳤다. 항공기가 이륙하며 내는 듯한 굉음에 낡아빠진 자동차의 차체가 불안하게 후들거렸다.

초승달이 붉게 물들고 먼 하늘이 점차 밝아오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또 시동이 꺼졌다. 이번엔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밀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아 고무호스를 연료 주입구에 넣어보니 호스 끝에 기름이 묻지 않는다. 연료가 바닥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1km 정도 떨어진 주변마을까지 차를 밀어다 놓고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매우 붐볐지만 자동차를 미는 것보다는 차라리 몸이 편했다.

마침내 마스빙고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찾아갔다. 석양빛 속 유적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삼각대를 펴놓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해질 무렵이 되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문을 닫을 시간이니 이만 나가라고 한다. 5분만 더 시간을 달라고 사정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생각하다 못해 약간의 담뱃값을 쥐어주니 표정이 180도 바뀐다.

“그럼 천천히 사진 잘 찍고 가슈. 보아하니 유적을 망칠 사람 같지는 않구먼.”

상냥하게 말한 관리인 영감은 곧바로 쩔그럭거리는 헌 자전거를 끌고 퇴근해 버렸다. 저녁노을에 물든 석조유적이 아름다웠다.

결혼식 날이 밝았다.

신부의 아버지는 마을의 제일가는 유지로 잔치는 하객들로 대성황이었다. 입구를 빨간색 꽃으로 장식하고 공터에는 하객들을 위해 천막과 의자를 설치했다. 아낙들이 둘러앉아 닭튀김, 고기경단과 같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결혼식은 근처의 교회에서 열렸다. 예식 자체의 모습은 서구적인 생활양식이 그대로 유입된 지라 우리의 결혼의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신부의 아버지가 암소를 끌고 나오듯 신부를 데리고 나오면 신랑에게 소유권이 이전되고 신랑과 신부는 물질적 증표를 교환한다. 지루한 주례사는 짐바브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이번 경우는 보통 결혼식과는 반대로 신부가 하마처럼 골격이 크고 우람한데다 집안 배경이 화려해서 몸집이 작고 얌전하게 생긴 치자 사촌형이 하마신부에게 팔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식이 끝나자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아줌마 합창단의 노래에 예쁜 소녀 들러리들이 춤을 추며 입장, 잠시 후에는 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 뒤섞여 흥겨운 춤을 추었다. 중간에 어떤 정신 나간 노파가 홀랑 벌거벗고 끼어 들어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잔칫집의 인심은 후했다.미친 할머니를 위해서도 식사를 차려주고 춤추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인간의 다양한 존재방식을 포용할 만한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춤을 추는 동안 결혼 선물을 쌓아놓고 하객들 앞에서 그 내역을 공개했다.

“어느 마을에서 온 아무개 씨 빨랫비누 한 상자.”

“추장할아버지 양말 두 켤레.”

“모모네 식구들 부조금 300달러.”

나는 부조금으로 짐바브웨 화폐로 200달러를 냈다. 우리 돈으로 만 원 가량. 염소 한 마리 값이다. 공개한 선물의 내용이 값진 것이거나 금액이 크면 하객들은 우렁차게 박수를 쳐주고 신부의 어머니는 멋들어지게 ‘야야 야이야~’하고 아프리카식의 독특한 고성을 질렸다. 약간 방정맞게 들리기도 하는.

시골마을의 결혼식에 온 이방인이 신기한지 모두들 나에게 접근, 말을 걸었다. 한국의 남자친구를 소개 시켜 달라는 당돌한 꼬마 아가씨부터 자기 마누라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곧 이혼할 계획이라고 털어놓는 아저씨까지, 순진한 사람들은 대화의 주제에 거리낌이 없었다.

저녁이 되자 유명한 짐바브웨 인기 가수가 와서 열창하며 흥을 더했다. 세 가지 면에서 영화 <대부> (Godfather)의 결혼식 장면을 연상시켰다.

1. 아버지가 거물이다.

2. 신부가 일반적인 미인형에서 거리가 있다.

3. 결혼식 피로연에 인기가수가 찾아온다.

축제의 밤. 온통 검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다시 한 번, 눈에 맛訣測?않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시공의 씨실과 날실로 짜인 그물 밖으로 멀리 멀리 탈출할 수 있었다. 일 초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찰나의 어지러움이 좋았다. 여기가 어딘지도 잊고, 내가 누군지도, 지금이 언제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완전히 길을 잃는 것은 현실의 내가 결코 하지 않는 짓이다.

탈출은 어렵지만 복귀는 순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시 피로연장이다. 친절한 누군가가 내게도 먹을 것을 권해주었다. 수백 명의 하객이 몰려온 잔칫집 앞마당에서 매캐한 흙먼지 냄새와 함께 요란한 춤과 노래가 새벽녘까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 그레이트 짐바브웨

비문자 문화권인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짐바브웨라는 국호 또한 '돌로 만든 집'을 뜻하는 쇼나(Shona)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우리의 첨성대를 연상시키는 돌탑들이 있는데 이곳의 용도는 종교적인 성지라는 주장과 군사적인 방어목적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는 모잠비크 해안에서 이 문명과 접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작 짐바브웨인들이 남긴 기록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돌담의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글ㆍ사진 소설가 박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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