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자꾸 떨어진다고 하니 급매물로 내놓아도 거들떠보는 사람조차 없어요. 당장 이 달 말까지 못팔면 15%나 되는 연체이자까지 물어야 할 판인데…."
서울 송파동 대림아파트에 사는 박모씨. "주택 담보 대출 만기가 이 달 말에 돌아오면서 시세보다 2,000만원 가량 싸게 내놓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상황을 봐가며 호가를 좀 더 낮춰야 할 지 고민"이라고 털어 놓았다.
집값이 하락하는 가운데 매수세마저 실종되면서 집을 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1주택 실수요자들의 경우 최근 거래 실종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마땅히 수입이 없는 고령자나 은퇴자, 자녀 교육이나 가족환자의 병원비 마련 등 경제적 이유로 집을 매매하려는 1주택자들이 많지만, '세금폭탄'과 과도한 담보대출 규제에 묶여 팔지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다.
양천구 목동의 중형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씨. 지난 10년간 이곳에서 살아온 이씨는 지난해 암에 걸린 부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려고 중개업소를 찾았지만, 양도소득세만 2억원 가량 된다는 말을 듣고 파는 것을 포기하고 전세를 주고 다른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염모씨는 "올 연초 정년 퇴직 후 아내와 함께 경기도 인근에서 노후를 보냈으면 좋겠는데 집을 팔자니 양도세 부담이 너무 크고, 또 막상 팔려고 하니 급매물도 소화가 안되는 상태라 급한대로 전세를 주고 이사갈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분당 정자동의 J공인 관계자는 "보유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급매물 등은 늘고 있지만 매수문의는 갈수록 격감하고 있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목동5단지 G공인 관계자도 "집값이 더 내려갈 것이란 기대가 큰 데다 대출 규제 강화에 따라 돈줄이 묶이면서 수천만원이나 싼 급매물이 나와도 팔리질 않는다"며 "급한 물건일수록 호가를 더 낮추지만 선뜻 사겠다는 사람은 드물다"고 전했다.
실제로 건설교통부가 3일 발표한 전국 아파트 거래신고 건수 및 실거래가 조사에 따르면 겨울 방학과 봄 이사철을 맞은 올 1~4월에도 서울 강남권 등 이른바 집값 상승을 주도해온 '버블세븐' 지역의 주택거래신고 건수가 지난해의 30%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집값 상승폭이 컸던 경기 과천시와 강남구는 올해 거래량이 지난해의 5~10% 에 그치는 등 극심한 거래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과천시의 경우 올 1월 3건이던 주택거래신고 건수가 2월과 3월 각각 7건을 기록한 뒤 4월에는 단 3건만 신고됐다. 강남구는 1월 95건, 2월 75건에서 3월 102건으로 소폭 늘었으나 4월에 다시 58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는 지난해 '11ㆍ15 대책'과 올해 '1ㆍ11 대책'에 따라 대출 규제로 돈줄이 막히고, 분양가 상한제 도입 등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자 매수자들이 주택 구입을 꺼렸기 때문이다.
거래 감소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교부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13평형(2층)은 지난해 12월말 7억7,000만원에 거래됐으나 같은 평형 같은 층의 경우 올 3월에는 이보다 6,000만원 하락한 7억1,000만원에 실거래가가 신고됐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34평형(15층)은 같은 기간 13억5,300만원에서 1억9,000만원이나 떨어진 11억6,3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4월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에서도 이 같은 시장상황을 반영하듯 지난달 전국의 집값은 3월에 비해 0.1% 오르는 데 그쳐 2005년 11월(0.0%) 이후 17개월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최근 부동산가격 하락은 과도하게 상승한 집값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최근 급격한 거래실종은 실수요자들에 큰 부담을 주는 등 시장 전반에 적지않은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거래 물꼬를 틀 수 있는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태훤기자 안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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