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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문턱없는 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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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문턱없는 밥집

입력
2007.05.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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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문턱없는 밥집'이 문을 연다. '기분 좋은 가게' 옆집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태복빌딩 1층에 이 달 중순쯤 문을 열 예정이다.

잘 지은 우리말 이름 때문에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업소는 그 내력을 알고 나면 기분이 더 환해진다.

문턱없는 밥집은 이름처럼 문턱이 없다. 돈 내고 사먹어야 하는 식당이지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낼 수 있는 만큼만 밥값을 내면 된다. 그렇다고 허투루 차리는 밥상이 아니다. 유기농으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기분 좋은 가게는 유기농 농산물과 품질 좋은 재활용 의류와 수공예품을 파는 곳이다. 여기서 파는 수공예품은 제3세계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정교한 생활공예품들로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와서 제3세계 빈민들을 돕는 데 한 몫을 한다.

기분 좋은 가게에서는 또한 우리나라의 옛 물건도 거래해서 우리나라 농민들이 거간에게 헐값에 넘기기 십상인 전통민예품에 제값을 받아주는 역할도 할 예정이다.

● 가난한 사람도 좋은 음식 먹도록

이 푸근한 가게 뒤에는 철학자 윤구병씨와 변산공동체가 있다. 1996년 대학교수직을 접고 농부로 전업한 윤구병씨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전북 부안에서 농사를 함께 짓는 변산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만든 유기농 곡류와 가공식품, 나물들이 이런 식당과 가게를 가능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한 것은 몸이 건강치 않아서라는 이유가 큰 몫을 하는데 가난한 사람일수록 좋은 것을 먹지 못하다 보니 이런 상태가 악순환된다.

예로부터 약으로 고치는 것보다 먹을 것으로 고치는 것이 최고라 했으니 가난한 사람이 건강하려면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윤구병씨의 평소 생각이었다.

이 때문에 값비싼 유기농을 가난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방편으로 만들어진 것이 문턱없는 밥집이다. 그렇다고 공짜밥을 먹이는 것은 의타심만 키울 뿐이라는 생각에 누구나 형편대로 돈을 내는 밥집을 만들었다.

아울러 이 밥집의 수익을 맞추기 위해 저녁에는 제값을 받는 유기농 한정식집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두 가게가 수익이 나면 망원 성산 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의 자활과 의료, 자녀교육에 쓰이게 된다.

윤구병씨와 변산공동체만 거명했지만 태복빌딩을 사들여 재정적인 뒷받침을 한 보리출판사 식구들, 그 책을 사랑해준 독자들 또한 이 아름다운 사업의 기획자들이요 실천가들이다. 이 밥집과 가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흔히들 웰빙의 다음 과정은 웰프랙티싱이라고 한다. 대구를 맞추어 나온 이 어색한 영어를 빼고 말하면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데서 나아가 좋은 세상을 위해 한 걸음씩 실천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20년 전 한살림이 한국에서 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농산물 직거래의 물꼬를 처음 텄을 때 정신은 좋은 음식을 잘 먹자는 뜻보다는 농민들을 농약농사로부터 구하고 농산물의 제값을 받아주자는 뜻이 더 컸다. 시작부터 실천이 강조됐다. 한살림의 근본 정신은 여전히 그렇다.

● 잘 살기보다 잘 실천하기로

그런데 최근 들어서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근본정신은 사라져간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져서 이웃(농민)을 살피자는 정신은 잊고 전세계 어디를 훑어서라도 내 몸에 가장 좋은 음식을 극성스레 찾는 추한 모습이 웰빙으로 오도된다. 오거닉이라는 상표를 단 수입 유기농 식품은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국산 유기농쌀은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 판로를 잃었다.

문턱없는 밥집은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고 농산물 직거래의 원래 정신을 되살리고 동참할 사람들을 넓혀나가자는 자리이다. 이 밥집을 계기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에게 넉넉한 것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한국사회는 얼마나 멋지게 바뀔까!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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