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접하고, 장성한 아들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얻어 맞고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보일 반응을 짐작해 보았다. 김 회장의 둘째 아들과 같은 또래 아들을 둔 아버지인 스스로와 친구들의 모습을 사고실험의 소재로 삼았다.
속은 상하더라도 "살다 보면 온갖 일이 다 있고, 그만 하면 다행"이라고 넘어가는 사람이 가장 많아 보였다. 까칠하게 살아 온 탓에 가해자를 찾아가 흥정을 벌일 친구도 떠올랐다. 반면 마음 넉넉하게 살아 온 친구들 가운데 "술 먹고 허접스럽게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다"고 오히려 아들을 나무랄 사람도 적지 않았다.
● 봉건 영주를 능가하는 힘
패거리를 모아 보복 폭행에 나서는 장면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코피가 터져 돌아온 아들 손목을 비틀어 잡고 "어떤 놈이 그랬어? 당장 가서 요절을 내고 오자"는 '억척 어멈'은 TV 드라마나 소설에서야 자주 보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고실험의 소재를 넓혀 가며 머리를 쥐어 짜다 보니 가능한 경우가 있긴 했다. 조직폭력배 두목이라면 '감히 누구 아들을' 하며 주먹을 부르르 떨고, 부하들은 충성 경쟁을 벌이며 보복에 열을 올릴 만하다.
또 과거 권위주의 시절 권력자의 아들이 경호원을 따돌리고 빠져나가 그런 꼴을 당했다면 청와대 경호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가장 상상하기 쉬운 것은 조선 시대 권문세가 자제가 저잣거리에서 당하고 돌아왔을 때이다.
조폭과 독재자와 봉건 지배층의 공통점은 도전 받지 않는 힘이 당사자들에게 심어준 특권 의식이다. 한화그룹이 언론에 알려 온 '인간적 면모'나 많이 지적된 '빗나간 부정(父情)'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김 회장의 심리상태도 이에 비추면 쉽게 풀린다. 특정 재벌그룹 회장의 개인적 일탈을 임의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의식의 상당부분이 환경에서 비롯하고, 재벌 그룹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환경이 급변해 왔음을 생각하면 김 회장의 일탈은 수면 아래 잠긴 재벌적 인식의 일각이 드러난 데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주화 20년 동안 한국사회가 겪은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권력의 해체 내지 구심력 이완이다. 정치문화가 바뀌고,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정경유착의 고리가 많이 풀리면서 중앙권력은 크게 위축됐다.
자리를 맡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대통령의 말이 대단한 무게를 갖지 않게 된 게 꼭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체되고, 고삐가 풀린 권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방정부로? 언론에? 관료조직에? 아니면 민주주의의 이상 대로 국민에게? 천만의 말씀이다.
개인적 감각으로 지난 20년 동안의 권력 재분배 과정에서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한 것이 재벌이다. 특히 'IMF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이 '경제의 힘'에 눈을 뜬 이후 의식을 지배하는 힘으로서의 권력은 압도적으로 재벌에게로 기울어 왔다.
그런데도 재벌의 시장적 성공에 가려져 국민의 경계심이 풀어졌고, 재벌이 가진 힘을 인위적으로 제약했던 정치 권력도 약화했다. 재벌 중심 경제의 폐해를 얘기하는 것이 시대착오로 취급될 정도로 국민의 인정을 받고 있으니 재벌은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으로 정당화된 권력, 즉 권위의 주체가 되었다.
● 견제 수단도 거의 사라져
한국의 재벌은 독특한 문화를 키워왔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고사하고, 극히 작은 지분만으로도 '오너'로서 경영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경영권을 무기로 조직 내부에 고도의 '오너 충성'을 실현하고 있다.
경영자가 바뀌거나 오너 일가가 바뀌는 것이 기업이나 조직원 다수의 운명과 그리 큰 관계가 없음이 여러 차례 확인됐지만 한번 정착된 '오너 충성'은 요지부동이다.
이처럼 과거 봉건 영주들조차 부러워할 만한 막강한 힘을 가진 재벌 총수라면 각별한 자기 노력이 없는 한 누구나 쉽사리 김 회장과 같은 의식에 젖을 수 있다.
이 모든 생각이 일시적 흥분에 따른 오해이고, '사회적 특수계급'을 부인하는 헌법 규정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고서는 정말 국민이 다시 재벌을 뜯어보게 될 것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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