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기 강원랜드배 명인전 본선 레이스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창호가 최근 뜻밖에 2연패를 당해 상위권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창호는 지난 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본선 리그 3라운드 대국에서 조한승에게 205수만에 불계패를 당했다. 이로써 이창호는 2라운드에서 목진석에게 일격을 당한 데 이어 내리 두 판을 져서 1승2패를 기록, 우승권에서 한 발 멀어졌다. 반면 이세돌이 2승, 조한승이 2승1패로 선두 그룹으로 나섰다.
이날 바둑은 이창호가 종반 무렵까지는 약간 우세했다. 그러나 하변에서 깜빡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조한승으로부터 묘수 한 방을 당해 단숨에 역전됐다. 흑(조한승)이 <1도> 1, 3으로 끝내기를 했을 때 알기 쉽게 백A로 지켰으면 한두 집이라도 백이 남는 형세였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이창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4, 5를 교환한 후 우상귀 6으로 손을 돌리자 조한승이 번개같이 7을 선수한 후(백이 8로 잇지 않으면 흑이 이곳을 먹여쳐서 패가 난다) 9로 붙인 수가 결정타였다.
그 수를 당한 이상, 백은 다른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2도> 1로 받는 것은 2부터 6까지 선수한 후 8로 수를 줄여서 백이 잡힌다(7 …▲). <3도> 1이 최선이지만 2, 6으로 내려서는 수가 있어서 결국 꽃놀이패가 만들어졌다. 이래서는 물론 역전이다. 사실 이 부근은 진작부터 맛이 아주 나빴던 곳으로 당시 바둑TV에서 생방송으로 해설을 하던 장수영 9단도 계속 백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했던 곳인데 이창호가 깜빡 실수를 한 것이다.
확실히, 이창호가 요즘 이상하다. 올 들어 성적이 12승8패. 승률이 60%에 불과하다. 아무리 못 해도 70% 이상을 기록하던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저조한 성적이다. 승률이 낮은 것 못지않게 더욱 기분 나쁜 것은 '패배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대국에서도 나타났듯이 예전 같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연초에 벌어졌던 국수전 제1국이 그랬고 삼성화재배에서 창하오에 진 바둑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명인전에서 목진석과의 대국에서도 그냥 계가로 갔으면 미세하나마 자신의 승리가 확실했는데, 초읽기에 몰린 상태에서 정확한 형세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무리하게 대마를 잡으러 갔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이창호는 요즘 컨디션이 최악인 듯 하다. 주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머리가 맑지 않아 정밀한 수읽기를 하기가 어렵다고 자주 호소하는가 하면 대국이 끝난 후에는 너무 지쳐서 종종 탈진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 4월초에는 KBS 바둑왕전 본선 대국을 마치고 대국실을 나오다가 잠시 정신을 잃고 복도에 쓰러져 대국자인 홍민표와 방송사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고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적도 있다. 또 지난주 한국바둑리그에서 제일화재 배준희와 대국할 때는 TV 화면에 비친 이창호의 얼굴이 너무나 피곤해 보였는지 네티즌들로부터 "이 국수님 얼굴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몸보신 좀 하셔야겠다"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결국 그 날 이창호가 바둑은 이겼지만 너무 피곤해서 승자 인터뷰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창호도 최근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아보았으나 뚜렷한 이상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정도의 진단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주위에서는 이창호가 워낙 어린 나이 때부터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시달리며 쌓인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돼 최근의 컨디션 악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빨리 결혼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특효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한국 바둑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보'인 이창호가 하루 빨리 정상 컨디션을 되찾아 '신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박영철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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