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황당했죠. 크리스마스 이브에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제가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맞았던 이유였으니까요.”
지난달 28일 서울 대방동 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모델 오디션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 소수자가 되어버린 ‘빅 사이즈’ 여성의 울분을 토해냈다.
참가번호 1번 강경미(30)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회상하며 담담하게 지원 동기를 설명했다. 억울해서 찾아간 경찰서에서조차 ‘얼굴은 예쁘니 살을 좀 빼는 것이 어떠냐’는 지적을 당했다는 강씨는 “이 사회에 신체의 자유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개인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행사에 대한 열의를 나타냈다.
신체 사이즈로 규정되는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며 당당한 아름다움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자는 목적으로 2005년 처음 열렸던 빅우먼 패션쇼가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가 부제로 6월 8일 서울패션아트홀에서 개그우먼 이영자씨, 여성학자 오한숙희씨의 진행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날 오디션에는 128명의 지원자 중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30명이 참가했다. 심사는 개그맨 전유성씨와 이혜경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안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박진창아 여성문화예술기획 사무처장 등이 맡았다.
2005년에 이은 2007 빅우먼 패션쇼의 총감독이기도 한 박진창아 사무처장은 “1회 행사의 빅우먼이 사이즈에 갇혀 있지 말자는 의미로 쓰인 말이었다면 올해는 단순히 몸의 사이즈뿐만 아니라 ‘통이 큰’ 빅우먼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올해는 2005년과 달리 10대 청소년 참가자도 있어 여성의 미를 새롭게 조명하자는 패러다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무려 3시간 30분 동안 계속된 오디션에는 눈에 띄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16세부터 47세까지 다양했으며 모녀가 함께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여성 장애인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다”는 신미옥(35)씨는 1급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오디션에 참가했다. 신씨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노사연의 ‘만남’을 심사위원 앞에서 불러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각자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나와 장기를 발휘한 참가자들은 외모 때문에 상처 받은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남편의 권유로 행사에 참여했다는 고윤경(28)씨는 “어렸을 때부터 덩치 값 하라는 소리가 가장 싫었다”면서 오디션 초반부터 눈물을 보였다. “왜 체구가 작은 사람에게는 소심하거나 속이 좁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덩치가 크면 무조건 마음도 넓고 이해심도 많아야 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가수 지망생이라는 한 참가자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노래를 하기도 전에 살 빼고 오라는 말부터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오디션 심사를 맡은 안혜경 대표는 “정해진 옷에 몸을 맞춰야 하고 이 때문에 상처 받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면서 “이번 행사는 온갖 편견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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