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고구려’가 아닌 ‘고구리’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구리’가 당시 고구려인들의 발음에 더 가까운 표기라는 것이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3, 4일 부산 경성대에서 열리는 고구려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고구려ㆍ구려ㆍ고려 국호의 소릿값에 관한 연구> 를 발표한다. 고구려ㆍ구려ㆍ고려>
서 교수는 11세기 중국 역사서인 <자치통감> 과 <신당서> 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자치통감> 에선 고구려를 고구려(高句麗), 구려(句麗), 고려(高麗)로 표기하면서 69차례에 걸쳐 구(句)와 려(麗)에 대한 발음법을 주석으로 달고 있다. 나라 이름을 고려(高麗)라고만 쓰고 있는 <신당서> 는 음이 틀리기 쉬운 글자를 모아 만든 부록에서 려(麗) 음을 7번 언급한다. 두 책 모두 공통적으로 구(句)는 ‘구’, 려(麗)는 ‘리’로 발음하도록 적고 있다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고(高)의 경우엔 서기 600년 이전의 상고음에선 ‘고’, 이후의 고대음에선 ‘가우’라고 발음됐다는 기존 연구에 의거해 ‘고’로 표기할 것을 제언한다. 신당서> 자치통감> 신당서> 자치통감>
이어 서 교수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한ㆍ중ㆍ일의 사전에서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제시한다. 청나라 때 제작돼 조선, 일본에서도 널리 사용된 <강희자전> 에는 고려를 ‘고리’로 읽어야 한다고 명기돼 있다. 우리의 경우도 정조 때 나온 <전운옥편> 에서 려(麗)가 ‘려’ ‘리’ 두 가지로 읽힌다면서, ‘리’로 발음하는 예로 고려(高麗)를 든 바 있다. 서 교수는 1915년 최남선이 편찬한 <신자전> 이나 해방 후 한글학회 등이 펴낸 자전 및 옥편에서도 려(麗)가 나라 이름에 들어있을 땐 ‘리’로 읽어야 한다는 내용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고구려 국호를 ‘고구려’로 읽기 시작한 것이 채 100년이 안된다”며 “학계에서 이 문제를 깊이 토론해 교과서 내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자전> 전운옥편> 강희자전>
서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신중한 반응도 나왔다. 한국 고대어 전문가인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자는 기본적으로 표의문자인 만큼 고구려어의 소리값을 정확히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며 “<훈몽자회> 에서 보듯 우리가 1,500년대부터 써왔던 ‘고구려’를 굳이 더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는 중국식 발음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훈몽자회>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고구려의 기원과 족원에 관한 제문제’를 주제로 7명의 고구려사 전공자들이 발표에 나선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주몽이 이끄는 건국 세력이 정착 지역에서의 취약한 기반 때문에 토착 세력과 긴밀히 타협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고구려’가 그 지역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고구려국’을 계승한 국호라는 점이 그 근거다. 고구려는 이후 부여 계승 의식을 강하게 견지했던 백제와 대립하면서 비로소 자국의 기원을 부여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부여 시조 동명왕과 고구려 시조 주몽이 동일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기수연(단국대 박물관) 박사는 고구려가 중국 상(商)나라의 후예라는 중국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런 상인(商人)후예설을 펼치는 학자들의 논리엔 정작 고구려와 상나라의 연원 관계를 보여주는 문헌 기록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 박사는 취약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상인후예설의 내용이 지린(吉林)성 용담산성 등지의 관광 안내문에 게재돼 있다며 “향후 중국 정부가 이 논리를 공식 학설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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