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11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았다. 29일 오후부터 시작된 이번 조사는 경찰과 김 회장, 피해자들간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면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김 회장은 납치 및 폭행 가담 여부를 묻는 경찰의 추궁에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도 정작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 회장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청계산 폭행 가담 여부에 대해 “두 달여가 지난 일이라 기억 나지 않는다”, “서면으로 소명자료를 제출하겠다”며 수사관의 공세를 피해갔다.
김 회장은 피해자들과의 대질 심문에서도 지루한 소모전을 폈다. 그는 당초 “명색이 대기업 회장인데 어린 친구들과 말다툼하고 싶지 않다”며 대질을 거부하다가 경찰이 한 쪽에서만 상대방을 확인할 수 있는 ‘선면(選面) 조사’ 방식을 제의하자 그제서야 응했다.
그러나 간접 대질로는 구속에 필요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경찰이 직접 대면을 끈질기게 요청했고, 재소환을 우려한 변호인의 설득으로 진술녹화실에서 김 회장과 피해자간 만남이 이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대질 조사에서 피해자들이 수사관의 질문에만 짧게 답변했을 뿐, 김 회장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이 이들에게 “내가 당신을 때렸느냐”고 다그치자, 한 피해자는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처벌을 받겠으니 진실을 말해 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조사 방식과 조서 문안을 놓고도 설전이 오갔다. 경찰이 “피의자는 비웃듯이 웃기만 한다”라고 기록하자 김 회장 변호인측이 삭제를 요구했고, 담당 수사관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니 삭제할 수 없다”고 맞섰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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