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분야에서 한국 연구진의 개가가 잇따르고 있다. 가천의대 조장희 박사는 서울대, 아주대, 삼성의료원과 함께 세계 최초로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 기반한 ‘한국인 뇌지도’(New Brain Anatomy)를 만들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뇌지도는 뇌 사진 위에 뇌줄기나 피질, 혈관 등 각 부위의 위치를 정밀하게 표시해 놓은 도형이다. 공동연구팀은 10~30대 건강한 한국인 수백명의 뇌를 촬영한 뒤, 뇌의 모습을 표준화한 책자를 6월께 발간할 예정이다. 미지의 땅을 지도를 보며 찾아가듯이, 뇌지도는 수술을 할 때나 뇌질환 치료법을 개발할 때 길라잡이가 된다.
지금껏 생생한 뇌지도는 없었다. 해부학 교과서에 실린 뇌 해부도는 모두 죽은 사람의 뇌를 직접 찍은 것이다. 물론 MRI(자기공명영상장치)나 PET(양전자단층촬영장치) 등으로 살아있는 뇌의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으나 해상도가 낮아 죽은 사람의 뇌를 잘라서 본 것만 못했다. “그러나 죽은 뇌로 공부한 의사나 연구자에게 살아있는 뇌는 미로와 같다”고 조 박사는 말했다. 우선 죽은 뇌에서는 뇌기능에 직접 관여하는 미세혈관을 관찰할 수 없다. 살아있을 때 있었던 뇌 속의 특이한 형태가 죽은 뒤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 박사는 “새 뇌지도에는 인류가 처음 보게 되는 부분들도 있어 새로운 해부학 용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박사팀은 독일 지멘스사에서 구입한 7.0T(테슬라)급 초고해상도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토대로 자체 고안한 첨단 촬영장비로 지도제작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쓰는 1.5T MRI보다 최소 3배 이상 높은 해상도를 가진 7.0T MRI는 세계에서 7곳 정도만 보유한 고가의 첨단장비다. 연구팀은 여기에다 수십 개의 코일로 구성된 헬멧 모양의 ‘헤드 안테나’를 자체 개발해 영상의 질을 극적으로 높였다. 실험참가자가 헤드 안테나를 쓰고 MRI에 들어가면 안테나가 MRI와 통신하면서 선명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이미 70년대에 세계 최초로 원형 PET을 고안해 ‘한국인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80년대에는 처음으로 2.0T MRI를 만들어냈다. 지난 해에는 세계 최초의 PET-MRI 퓨전 영상시스템을 2008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새 뇌지도의 최대 수혜자는 의사들이다. 조 박사는 “기존에는 동양인과는 크기나 모양이 다른 서양인들의 뇌가 표준지도였기 때문에, 한국인 환자들의 뇌를 MRI로 찍으면 매핑을 위해 영상을 조절해야 했으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또 “미세혈관의 위치까지 미리 알고 수술에 임하므로 성공률을 더 높일 수 있고, 뇌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해 뇌졸중과 같은 중증 뇌 질환을 미리 진단하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뇌과학 용어해설
▦PET(양전자단층촬영장치): 방사성물질을 영양분과 함께 정맥에 주사하면 이 물질이 영양분 소모가 많은 조직(암세포, 활성화된 뇌세포 등)에 달라붙는데, 여기서 나오는 방사선 양을 측정하는 촬영기법.
▦MRI(자기공명영상장치):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키면 물, 뼈, 근육 등이 다르게 반응하는 성질을 이용, 컴퓨터를 통해 3차원 해부학적 영상을 만들어내는 장비.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는 MRI 사진을 여러 번, 빨리 찍어서 활동성을 촬영하는 방법이다.
▦테슬라(T):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정도. 일반적으로 T 수치가 높을수록 MRI의 해상도도 높지만, 기계의 조율 상황, 다루는 사람의 수학 및 공학적 능력 등에 따라 같은 기계라도 해상도가 몇 배나 차이 나기도 한다. 3.0T가 병원에서 상용화된 수준. 7.0T MRI는 연구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IQ(Intelligence Quotient) 검사 : 1916년 스탠퍼드대학의 루이스 터먼이 처음 개발한 이후 수많은 IQ검사가 등장했다. 한국에선 1986년 교육개발원이 해외 지능검사법(웩슬러 방식)을 수정해 사용하고 있다. 지능지수 값은 절대치가 아니라 상대치이다. IQ값이 표본의 상위 2.5% 수준이면 130, 상위 0.5% 수준이면 145 수준이다.
[기획취재팀]
유승우팀장swyoo@hk.co.kr
이희정기자jaylee@hk.co.kr
문준모기자moonjm@hk.co.kr
김광수기자rolling@hk.co.kr
■ 웰빙 가고 웰싱킹!
주부 정은영(39)씨는 두 달 전까지 나이가 40대 후반이었지만 이제 35세가 됐다. N사의 두뇌훈련 게임기에 표시되는 ‘뇌 나이’다. 점수합계를 뇌 나이로 환산해서 알려주는데, 머리가 좋아진다는 생각에 한번 게임을 손에 잡으면 1, 2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이 게임은 텔레비전 광고를 타고 최근 뇌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최고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인기를 몰아 올해 초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간단한 계산을 빠르게 반복할 때 뇌에 공급되는 혈류량이 증가해 좌우 뇌기능이 활성화되는 원리다.
정씨는 “정말로 머리가 좋아지는지 알 수 없지만 게임을 하면서 생활에 대한 자신감마저 생긴다”며 “이웃끼리 서로 뇌 나이를 물어볼 정도로 주변에서도 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말했다.
뇌의 신비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뇌과학의 진전에 발맞추어 일반인의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서점가에서 뇌를 소재로 한 도서는 지난해 45종에서 올해 80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뇌를 좋게 하는 훈련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다수다. 지난해 초 국내 한 신경과 교수가 쓴 책은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도 한달 만에 2만부가 팔렸다.
건강을 돌보는 ‘웰빙(Well-being)’을 대신할 새로운 트렌드는 뇌를 돌보는 ‘웰싱킹(Well-thinking)’이라는 말도 나온다. 열풍의 또 다른 진원지는 교육분야다. 1991년 출시한 D사의 뇌파학습기는 130만대가 넘게 팔려 이미 수년 전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랐고, 최근에는 컴퓨터 화면에 파동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뇌파를 직접 보면서 조절하는 뉴로피드백(Neuro feedback) 제품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혈압을 재듯이 자기의 뇌의 상태를 체크한다. 지난 달에는 중국어를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 의 보도가 소개돼 학부모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더>
한때 ‘웰빙’이란 말이 그랬듯이, 이제 뇌를 지칭하는 뉴로(Neuro:신경)라는 접두어가 상업적 성공을 예약한다. ‘뇌산업(Neuro-industry)’은 과거에는 뇌질환 치료제, 인공지능 로봇 등 과학자들의 연구주제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학습능률 향상, 수련을 통한 심신의 안정에 이르기까지 실로 무궁무진하다.
기업도 뇌를 활용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최첨단 광고기법은 뉴로마케팅(neuro marketing)이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뇌 내부의 혈류량을 촬영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순간적인 감성변화와 반응을 포착해내는 기법이다. 화장품 업체 A사는 지난해 이 기법을 사용해 모델의 이미지와 제품용기를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고, 다른 국내기업 3, 4곳도 회사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는데 이 기법을 사용할 예정이다. 뉴로마케팅은 설문지를 눈으로 보고 머리 속에서 생각한 뒤 대답하는 기존의 조사방식에 비해 소비자의 선호와 구매욕구를 훨씬 정확하게 반영한다.
일부에서는 뇌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우려하고 있다. 뇌기능 향상제가 대표적이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에 불과하지만 수백 종에 이르는 제품이 팔리고 있다. 아주대 곽병주(의대) 교수는 “최근 뇌열풍을 타고 범람하고 있는 뇌기능 향상제를 무분별하게 복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약을 먹고 머리가 좋아지는 시대가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당부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k.co.kr
■ 향후 노벨상의 寶庫 '뇌연구'
사람의 뇌는 흔히‘소우주’라 불린다.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얽혀 작동하는 구조가 우주의그것에 비견될뿐아니라, 많은 부분이 미답(未踏)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다시 일곱 개의 머리가 자라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 히드라와 비슷하다.” 영국의 뇌과학자 수전 그린필드는 저서 <휴먼 브레인> 에서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더많아지는뇌연구의 고충을 이렇게 비유했다. 휴먼>
그러나 인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진리의 열쇠에마저 손을 뻗치고 있다. 뇌의 신비를 밝히는 작업은 질병 극복과 수명 연장, IT 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삶의 질 향상 등 모든 미래과학의 기반이다. 또한‘나는 누구인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뇌과학을“인류 최후의 학문이자 향후 노벨상의 보고”라고 말한다.
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뇌의 기능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더딘 작업은 1975년 PET를 비롯해 MRI(1979), fMRI(1992) 등 뇌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장치가 개발되면서 비약적인 성장기를 맞았다. 정재승 KAIST 교수는“인간이 뇌에 대해 지난 30년동안 알게 된 지식은 앞선, 300년 동안 알아낸 지식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뇌 연구는 미국이 단연 선도하고 있다. 1990년 1월 의회의‘뇌 10년(Decade of the Brain)’ 선언을 계기로 국립보건원(NIH)이주축이돼뇌질환과뇌-기계접속기술 등 뇌 과학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03년한해정부 예산만65억 달러(약 5조7,000억원)다. 마이크로소프트의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이 1억 달러를 기증해 설립된‘앨런뇌과학연구소’를 비롯한 민간부문의 업적과 투자도 활발하다.
일본도 21세기를‘뇌의 세기’ (Century of theBrain)로 명명하고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1997년 20년 장기계획을 담은‘뇌 과학 프로젝트’를 내놓고 국책기관인 이화학연구소에 뇌과학종합연구센터(BSI)를 설립하는 등 연 500억~800억엔(약6,200억원)을 뇌 연구에 쏟아 붓고 있다. 유럽연합(EU)은1991년‘유럽뇌10년’을선언했고, 프랑스의 경우 정부와 민간을 합쳐 10조원 가량을 뇌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에 신경과학연구소를설립했으며 초대 소장을 맡은 무밍푸 박사를 비롯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자국 출신 저명 과학자들을영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한뒤 올해까지 10년째 국가차원의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2차 뇌연구촉진 시행계획이 시작되는 2008년도에는 과기부 262억원, 복지부 73억원 등 연구비 492억을 투자할 방침이다. 일본 BSI를 모델로 한 뇌과학연구소도 설립키로 했다. 첫 10개년 계획이 실행되는동안 뇌과학, 뇌의약학 분야 연구인력은 98년 각각 350명, 300명에서 2003년 980명, 80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국가지원은 미국, 일본과 비교해 각각200분의 1,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한 뇌의학 교수는“우리의 연구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만, 투자가 부족해 초기 단계에서 외국에 라이선스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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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우팀장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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