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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퇴임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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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퇴임자의 품격

입력
2007.04.2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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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얼마 전 숭실대 특강에서 밝힌 2003~04년 당시 대선자금 수사 당시 비화는 흥행성을 갖췄다. 여간해선 알기 어려운 청와대와 검찰의 힘 겨루기,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권력핵심부의 막후(幕後)가 공개됐다는 게 흥미롭고 그것이 당사자인 전직 검찰총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놀랍다.

청와대의 반박이 있는 만큼 송 전 총장의 언급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 보다는 송 전 총장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 보다 더 썼다면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10분의 2,3을 찾아냈다"고 한 대목도 그렇다. 지난 대선까지의 선거풍토를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10분의 1'의 울타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다수의 짐작 내지 통념이다.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또 한가지 이유를 대라면 강직한 성품을 꼽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송 전 총장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거짓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는 자주 들었다. 2004년 대검 중수부 폐지 움직임이 일자 청와대를 향해 "먼저 내 목을 치라'고 했던 결기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말했다 해도, 송 전 총장 스스로가 그런 말을 한 게 적절한 것인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건재한데 지금은 현직이 아니라고 해서 자신과 청와대 사이에서 벌어진 일, 대통령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일을 들춰낸 것은 볼썽사납다.

혹 "차제에 불법 대선자금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공개적 요구라면 의미가 있다. 자신이 수사의 총책임자였다는 점에서 용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기 없는 정권을 깔아뭉개고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려는 언사에 불과하다. 아니길 바라지만, 정치입문을 위한 포석이라면 야비하다.

예상대로 언론과 야당의 칼끝은 송 전 총장의 발언내용, 즉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향하고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싫든 좋든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권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며 녹(祿)을 먹었던 사람에게 기대되는 최소한의 예의, 품위, 도리 같은 것을 어겼다. 그가 재임기간 중 청와대와 긴장 관계였다는 사실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그건 자기들끼리의 문제다.

참여정부 들어 정권 핵심에 있다가 옷을 벗은 뒤 대통령과 정부를 조롱하고 비난한 인사들은 벌써 여럿이다. 앞선 정권에선 보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노무현의 사람'으로 분류됐던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최근 한미 FTA에 강력 반대하면서 "나는 가르치긴 잘 했는데 대통령이 잘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시위농민 사망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게 억울했던지 정부비판도 모자라 지난해 7월 재ㆍ보선에 출마하겠다며 한나라당에 공천신청까지 했다.

어떤 이는 전에 없던 일이 빈발하는 게 다 정권이 못나서라고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해당 인사들의 품격 문제가 첫째다. 누릴 것은 누리고, 정권이 만만하다고 수 틀리면 돌아서서 침을 뱉는 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기억할까 걱정된다.

유성식 정치부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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