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참사는 많은 의문을 남긴 채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건 10일째인 25일 현지 경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범행동기 등 핵심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이 교내에서 2차 범행 현장인 노리스홀(공학관) 강의실에 진입하는데 무려 5분을 소비했던 사실도 드러나 이번 발표는 의혹만 키운 꼴이 됐다.
경찰에 따르면 30명이 희생된 노리스홀의 참사는 9분간 지속됐다. 범인 조승희는 3초 간격으로 총알 170여발을 권총 2정 또는 1정으로 난사했다.
당시 경찰은 3분만에 현장에 달려왔으나 건물에 집입하는데는 5분이나 걸렸다. 경찰은 주변을 정리하고, 진입 팀을 짜고, 또 조승희가 쇠사슬로 막은 문을 부수려 했다. 이어 총을 쏴 쇠사슬을 끊자 조승희는 잠시 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조승희의 이 마지막 총소리는 경찰이 2층으로 올라가던 중 들려왔다.
경찰이 머뭇거리던 5분 간 조승희는 희생자들을 향해 빗발치듯 총을 쏘아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총격이 9분간 지속된 점을 감안할 때 경찰 진입이 5분 먼저 이뤄졌다면 희생자 절반은 목숨을 구했을 수도 있다. 1999년 컬럼바인 참사 때도 경찰은 40분이나 늦게 건물에 진입해 희생을 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버지니아 경찰은 계획적 진입이 추가 참사를 막은 적절한 대응책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조승희의 컴퓨터와 휴대전화, 이메일 등에서 범행동기를 추정할 만한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정적 제보가 없는 한 에밀리 힐셔가 첫 1차 범행의 첫 희생자가 된 이유는 물론 노리스홀이 2차 범행장소로 지목된 이유 등도 미스터리로 남을 전망이다.
한때 사라졌던 조승희 추모석은 25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기구인 ‘호키스 유나이티드’가 석회암 조각인 ‘호키석’으로 만든 33개 추모석 중 하나인 조승희 추모석은 23일 오전 감쪽같이 없어지고 대신 성조기만 남아 있었다.
이틀만에 돌아온 조승희 추모석은 당초와 달리 다른 희생자를 기리는 32개의 추모석에서 다소 떨어진 장소로 옮겨졌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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